대한민국 건설산업에서 풀뿌리 역할을 해 온 ‘중소업체’ 들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건설산업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중추적인 업종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부동산PF 부실, 공사현장 실행률 압박, 공공공사 물량 감소 등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다. 여기에다 올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따라 사실상 전(全) 건설현장이 사정범위에 들어가면서 사면초가 상황에 놓였다.
/올 들어 중소업체 10곳 부도…부동산 경기 침체 후폭풍
25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1∼10월까지 부도난 건설업체는 총 26곳(종합ㆍ전문)으로 2019년 후 가장 많다. 이 중 종합건설사는 ㈜익수종합건설, 남흥건설㈜, 뉴월드종합건설㈜, ㈜담소종합건설, ㈜디알종합건설, 진광종합건설㈜, 영건설㈜, 한호건설㈜, ㈜시온건설개발, ㈜신태양건설 등 10곳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매출액 등 기업 규모면에서 차이는 있으나 중소업체로 분류된다. 2020∼2022년 활활 타올랐던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가라앉으면서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다 코로나19 후 자재가격이 폭등해 건설현장 실행률이 급속도로 악화했으며, 이를 놓고 공공ㆍ민간 발주기관들과 갈등을 빚었다.
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A 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0년 1월 설립된 이 업체는 건축공사업 면허를 확보해 관공서 및 민간 발주기관 입찰에 적극 참여해 매년 평균 50억원 정도의 매출액을 발생시켰다. 중소업체로서는 드물게 건축자재 연구개발을 위한 부속연구소 설립도 추진할 정도로 대표는 건설업 영위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재가격 폭등의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미수금은 쌓이는 등 경영 상황은 악화했다. 한 건설원가 전문가는 “이 정도 규모의 업체는 건설현장 한 곳에서만 미수금이 발생해도 존폐 기로에 서게 된다”며 “발주기관 입장에서도 예산 증액 편성을 탐탁치 않게 여길 가능성이 높아 갈등 조절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 1월 확대 시행된 중처법에 경영책임자 골머리
설상가상으로 올해 1월부터 확대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도 중소업체들을 옥죄고 있다. 공사 규모로 50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에도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대한민국 전체 건설현장이 범주에 들었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2022년 시행된 중처법은 ‘처벌’이 아닌 ‘예방’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경영책임자를 압박하는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업체는 중대재해가 발생해 경영책임자, 즉 대표가 실형을 받을 경우 업체 자체가 폐업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는 건설현장 셧다운은 물론, 지역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종국엔 지역 경제 활성화에 역행하게 된다.
확대 시행된 중처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중처법 확대 시행 전인 2023년 상반기에 사고사망자(건설업 포함 전 산업)는 378명이었지만, 올 상반기는 384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서울 소재 C 중소업체 대표는 “정부가 건설현장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요율을 상향시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등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문제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처벌에 치중되어 버린 중처법 자체”라며 “중대재해 책임을 명확하고, 업체 규모별 의무화도 차등을 주는 등 중처법 대수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석한 기자 job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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