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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한지아티스트 전광영의 60년 화업..."스타보다 훌륭한 화가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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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2-03 15:19:17   폰트크기 변경      
가나아트센터에서 팔순 기념 회고전 4일 개막....한지조형아트 등 50여점 선봬

‘한지 조형예술의 선구자’ 전광영 화백(80)은 1969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무작정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들이 판검사가 되기를 원했던 부친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는 미술로 승부를 걸고 싶었다. 필라델피아대 대학원에 다니며 염색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삶을 포기할까 했을 정도로 절박한 시간들이었다.
 1995년 대학원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어린 시절 큰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의원에서 늘 봐왔던 한약 봉지에 착안한 작품을 내놓았다. 각형 모양의 작은 스티로폼을 고서(古書) 한지로 싼 후 이를 캔버스에 일일이 붙이거나 설치하는 작업은 단번에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 후반에는 평면 부조에 이어 입체와 설치 작업으로 작품의 영역을 확장했다.

전광영 화백이 3일 경기도 용인 고기리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집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갑 기자


올해로 팔순을 맞은 글로벌 아티스트 전 화백이 또 한 번 큰일을 해냈다. 전 화백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4일 시작해 내년 2월 2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을 '집합-틈새의 공명‘으로 붙였다. 60년간의 화업을 통해 '예술을 위한 예술'의 통념을 깨뜨리고 대중미술의 프리즘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자는 의도에서다. 역경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미술을 통해 예술정신을 끝까지 붙았던 자신의 집착과 열정을 존경한다는 마음도 담았다.

세계 정상을 향해 달려온 그는 이번 전시에 60년 미술인생 여정에서 독기어린 예술정신만을 뽑아내 전시장을 꽉 채웠다.  최근작 ’집합‘시리즈를 비롯해 설치 작품 등 20여 점을 풀어 놓았다.  팔순의 나이에도 경기도 용인 고기리 작업실에서 일군 열정의 산물이다.

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을 비롯해 마르셀 뒤샹, 로버트 라우션버그,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업을 탐구하며 인생 막판까지 죽을 각오로 ‘K-아트의 꽃’을 피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전통 한지와 노끈으로 동여맨 작품들이 아련한 빛이 돼 점점이 흘러내린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과 영혼이 지문처럼 남겨진 고서를 즐겨 활용한 그의 작품에는 빛과 색의 멋, 인연과 연기(緣起) 같은 동양적 가치가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이 속세를 떠나 조용히 참선 수행하는 선방을 연상시키는 이유다. 수많은 고서 한지 조각들이 서로를 감싸안은 화면이 더 그렇다.

전 화백은 “나무에서 잉태된 전통 한지에 축적된 책을 재료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디지털 사회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치유하는 위한 메타포가 된다”고 했다.

전광영 화백의 '집합'                                          사진= 가나아트센터 제공

◆ ‘한지 조형 예술의 개척자’로 우뚝

서구예술의 우월주의에 맞서 뚝심으로 ‘전광영표 예술’을 밀고 나간 그는 아시아 또는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이미 수십 년 전에 낙관했다. ‘한지 예술의 개척자’라는 소개 뒤에 따라붙던 ‘K-아트 전사’라는 과격한 별명은 그에겐 훈장이자 별점이었다.

고서를 활용한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2009년 미국 코네티컷주 얼드리치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초대전은 뉴욕타임스에 리뷰 기사가 실릴 만큼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일본 모리아트센터, 캐나다 몬트리올의 란다우 갤러리, 싱가포르 타일러센터, 미국의 와이오밍대 부설 미술관 등에서 연 개인전에도 국제 미술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세계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 올림픽’ 베니스비엔날레도 그의 이런 열정을 놓칠리 없다. 2015년에는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특별전에 초대됐다. 2022년에는 벨기에 보고시안재단이 베네치아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으로 그를 어김없이 호출했다.

그의 작품은 모교인 홍익대 미술관을 비롯해 뉴욕의 록펠러 재단, UN본부 및 런던의 빅토리아앤 앨버트 뮤지엄, 대영박물관, 홍콩의 새로이 문을 연 M+(엠 플러스), 조던슈니츠 미술관 등에서 소장하면서 세계 최고의 기관과 협업해왔다. 또한 호주의 미술교과서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실리기도 한 그는 2014년 5월에는 해외의 저명한미술 전문출판사인 스키라 리졸리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단행본이 출간돼 주목을 받았다.

“우리 고유의 한지를 소재로 꾸민 한국 현대 미학의 우수성을 세계를 알린다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전 화백은 맨손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한 기쁨을 감회어린 표정으로 털어놨다.  지난 60년동안 400여 차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약 500만㎞를 달려 끈질기게 개척한 시장이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 예술 마라톤의 마지막 목표 향한 질주

이제 전 화백은 ‘예술 마라톤’에서 마지막 목표 지점을 향해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동안 세계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90세가 되기 전까지 회화와 조형아트를 통해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첨단문화 사이에서 진짜 우리의 정체성이 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질 예정이다.

K-아트를 생각하며 어느새 높이 떠 종이 조형의 세계를 바라보던 그는 “한지 작업은 자신을 표현하고 서구과학의 한계를 느낀 우리 입장과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한지예술로 서양미술을 압도한 셈이다.

전 화백은 그러나 국제 미술시장을 개척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K-아트의 저력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한국 작가들은 이제는 미국 유럽 등 서양 아티스트 못지않게 여러 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제작기법, 아이디어, 인지도, 유통 지배력, 마케팅 측면에서 그렇다. 그는 “미술품 애호가를 찾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잡을 그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기작가보다는 ‘훌륭한 작가’로 남고 싶다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귀전을 맴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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