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 심화 속 실물경제 타격 우려
밸류업ㆍ양극화 해소 정책 등 동력 상실
정상급 외교 중단…트럼프 2기 대응 비상
[대한경제=이근우 기자] 대한민국 경제가 탄핵 정국에 빠져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매고 있다. 저성장 및 내수 부진에다 트럼프 리스크까지 겹친 상황이라 탄핵 정국이 길어질수록 정부의 경제정책에 맥이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장기적인 정책 로드맵뿐 아니라 내년도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의 여야간 합의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교육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부 장관 등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반도체 기업의 통합 투자세액 공제율을 현행보다 5%포인트(p) 상향하고,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시설 투자를 포함하는 정부 지원책도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법) 역시 현재로서는 논의 재개 시점을 예상하기 힘들다. 원전 수출과 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 등 주요 사업들도 난관에 부딪혔다. 탄핵 논의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키면서 추진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모두 주주환원 증가액 법인세의 5% 세액공제, 배당 증가액의 저율 분리과세, 상속세 관련 최대 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자산시장 밸류업을 위한 정부 조치들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좌초되거나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최고세율 인하 등 내용을 담은 상속세제 개편안, 정산 주기 단축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 한도 상향 등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법 개정안 등 법안들도 표류하게 됐다.
윤석열 정부가 하반기 핵심 의제로 내세운 양극화 해소 정책도 백지화될 위기에 놓였다. 대통령이 내년 양극화 해소 종합 대책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 발생도 걱정스럽다. 앞서 야당은 정부안에서 4조1000억원을 삭감한 ‘단독 감액예산안’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여야 협상은 전면 중단된 상태고, 탄핵 여론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여야간 정상적인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지는 미지수다.
준예산은 직전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해 전년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이다. 공무원 인건비, 국고채 이자, 국민연금, 아동수당, 생계급여 등 기본적인 예산 집행만 가능하다. 상당수 복지 재원 지출이나 재량 지출 등은 집행 제한이 불가피해진다.
경제외교는 사실상 올스톱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련된 핵심 의제의 경우 대부분 정상급 외교에서 조율해야 하는데 계엄사태 후유증으로 제대로 된 기능 작동이 불가한 상태다.
한국으로서는 내년 초 출범하는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수립되기 전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해 우리 입장을 미국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금이 골든타임인데 혹여나 이를 놓칠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실종되고 향후 정권 교체의 변수까지 대두되면서 중장기적인 정책 로드맵 설계가 불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당장 기획재정부가 마련중인 내년도 경제정책방향부터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근우 기자 gw89@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