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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MZ가 바꾼 ‘新광장 민주주의’… 충돌 아닌 ‘연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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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2-08 13:27:31   폰트크기 변경      
尹 탄핵 무산 되던 날

한파 속에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
‘카페ㆍ빵집’ 선결제 기부 릴레이
충돌 대신 질서있는 시위 문화
외신 “韓 시민의식 믿기지 않아”


7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시민들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후손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줄 수 없습니다. 유신부터 12ㆍ12사태, 5ㆍ18과 같은 암흑의 시대는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끝내야 합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에서 만난 강북구 시민 김순희(70)씨는 “후손들에게 아픈 역사를 물려줄 수 없단 마음에 눈물만 나온다”며 이같이 탄식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첫 주말인 이날 영하 2도의 추운 날씨에도 시민 100만명(주최 측 추산)이 국회 앞에 모였다. 여의도 광장은 탄핵소추안 폐기 소식에도 발걸음을 떼지 못한 시민들의 대규모 행진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탄핵소추안 폐기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지자 일부 시민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몇몇 시민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7일 밤 영하 2도의 날씨에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 가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인파가 모인 모습/사진 : 박호수 기자 


5살 딸아이를 품에 안고 행진에 참여한 경기도 수원 시민 김영욱(39)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지금의 역사를 제대로 배웠으면 한다”며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눈 대통령은 자격을 잃었으며,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는 반드시 국민이 뜻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과 늦은 시간까지 남았다”고 말했다.

이날 이른 오전부터 시작된 여의도 ‘범국민촛불대행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가 시작된 오후 5시를 전후로 인파가 급격히 몰렸다.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탄핵‘, ‘민주주의 수호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연신 외쳤다. 인근 사람들과 계속해서 어깨가 닿고, 몸이 떠밀릴 정도로 밀집한 인파 속에서도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평화로운 시위를 이어갔다.


집회 현장에서 보인 이색 깃발과 플래카드/ 사진 : SNS 갈무리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떼창’이나 ‘막춤’을 추는 흡사 ‘락 페스티벌’과 같은 집회 분위기도 연출됐다. 이날 저녁 ‘김건희 특검법안’이 부결되자 시민들은 잠시 탄식하다가도, 이내 다시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로제의 ‘아파트’, 데이식스의 ‘웰컴 투 더 쇼’ 등 K팝을 따라 부르거나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었다.

대학생 김연우(22)씨는 “집에서 계엄령 소식을 들었을 땐 밤잠을 못 자고 떨며 무서웠는데, 막상 이곳에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시민들을 보니 기쁘고 벅찬 마음이 크다”며 “하루빨리 나라가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인근 카페, 빵집 등에서는 시위하는 시민들을 위한 ‘선결제’ 릴레이도 이어졌다. “집회에 왔다”고 말하면 전국 곳곳의 시민들이 대량으로 우선 결제한 커피와 간식, 핫팩 등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또한, 거리 한쪽에선 “쓰레기를 이곳에 모아 건강한 집회 문화 만들어요”라고 외치는 시민 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인파 속에서 한 시민이 참가자들에게 쓰레기 없는 깨끗한 거리 만들기 캠페인을 독려하며 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 사진 : 박호수기자 


자신을 영국 외신기자라고 소개한 한 시민은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믿기지 않는 수준”이라고 호평했다. 그는 “이들은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나라가 위험에 빠진 순간에도 폭동이 아닌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며 “So interesting(너무 흥미롭다)”고 연신 외쳤다.

그러나 오후 5시40분쯤 여당 의원들이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집단 퇴장한 것을 지켜본 시민들은 사이에서는 분노가 쏟아지기도 했다. 국회의사당 앞 대형스크린 생중계를 통해 텅 비어있는 국회 본회의장이 나오자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 “국민의힘 해체하라”, “국민의힘은 다시 돌아와 탄핵 표결에 동참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7일 오후 여의도 국회대로를 행진하며 질서정연하게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는 시민들/ 사진 : 박호수 기자 


서울 소재 대학생 허정인(23)씨는 “국민의 투표로 국회의원 자리에 간 자들이 어떻게 국민에게 ‘투표해’라는 구호를 외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조상들이 지켜낸 민주주의를 이렇게 박살내 버리는 걸 현장에서 지켜보는 상황이 너무 참담하다”고 탄식했다.

결국 이날 9시20분쯤 우원식 국회의장이 표결을 종료키로 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폐기됐지만, 시민들 대다수는 “다시 나오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대학생 김민정(25)씨는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드시 우리 손으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집회가 있는 한 계속 나올 것”이라고 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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