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희용 기자] 정유ㆍ석유화학업계에게 올해 중국발(發) 이중고에 시달린 해였다. 정유산업은 중국의 수요 부진과 정제마진 하락으로, 석유화학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 여파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업계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리더십 교체로 위기 돌파를 모색했지만, 근본적인 시장 환경 개선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다.
석유화학업계는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증설이 업계를 강타했다. 중국이 자국 내 정제설비와 석유화학 설비를 대폭 늘리면서 아시아 시장의 공급과잉이 심화됐다. 중국의 석유화학 설비 자급률은 이미 100%에 근접했고, 넘치는 물량을 수출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쏟아내면서 업계 전반에 전반이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요 부진까지 겹치며 불황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올 3분기 누적 기준 37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도 671억원의 적자를 냈다. 특히,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비중이 큰 롯데케미칼은 6346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기초소재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가진 기업일수록 실적 충격이 컸다는 점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위기 극복을 위한 업계의 구조조정도 본격화됐다. LG화학은 나주 공장의 알코올 생산을 중단했고, 롯데케미칼은 수익성이 악화된 파키스탄 PTA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SK이노베이션도 여수 NCC 2공장 매각을 추진하는 등 수익성 개선에 속도를 냈다. 업계 전반에 걸친 이러한 구조조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광범위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유업계는 정제마진 약세에 허덕였다. 중국의 수요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동 지역의 정제설비 증설까지 겹치며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을 하회하고 있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3분기 배럴당 3.6달러 수준에 그쳤다. 이는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배럴당 4~5달러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여파로 정유업계는 3분기에만 2조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분기 적자다.
3분기 누적 기준 적자로 돌아선 기업들도 많다. GS칼텍스(정유부문)와 에쓰-오일(정유부문)은 각각 4632억원, 4183억원의 적자를, HD현대오일뱅크(정유부문)은 72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상태다.
리더십 교체도 잇따랐다. 롯데그룹은 화학사업군 CEO 13명 중 10명을 교체했고, SK이노베이션은 SK에너지ㆍSK지오센트릭ㆍ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3개 계열사 수장을 전원 교체했다. 교체된 자리엔 이공계 출신 기술 전문가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기술 혁신을 통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유업계는 구조적 수요 변화라는 근본적인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중국과 선진국을 중심으로 친환경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운송유 수요가 점진적으로 감소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LNG트럭 판매도 크게 늘어나며 석유제품 수요 감소를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 강화로 석유 기반 제품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어 장기적인 산업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업계 재편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이 확대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최근 정부는 기업활력법 기준을 완화해 업계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M&A 절차 간소화, 세제 혜택, 정책금융 지원 등이 검토되고 있어 업계 재편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친환경 소재와 바이오 연료 시장의 성장도 새로운 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정유사들은 바이오디젤과 바이오항공유(SAF) 등 친환경 연료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석유화학사들은 바이오 플라스틱과 재생 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SAF 시장은 항공업계의 탄소중립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희용 기자 h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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