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을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ㆍ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대표가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어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인명 피해를 입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의 상고심에서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홍 전 대표 등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주원료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ㆍ판매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폐 질환ㆍ천식 등으로 12명을 숨지게 하고 86명에게 상해를 입히는 등 인명 피해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검찰은 이들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이 주원료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ㆍ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공범이라고 봤다. 피해자 98명 가운데 94명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옥시 등 여러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함께 쓴 ‘복합 사용 피해자’라는 이유였다. 앞서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는 징역 6년이 확정됐다.
1ㆍ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CMITㆍMIT 성분이 폐 질환ㆍ천식을 유발ㆍ악화했는지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피고인들은 제품 출시 전 안전성 검사를 이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품 출시 후 요구되는 관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피해를 확대시켰다”며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옥시 사건의) 피고인들이 제조ㆍ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의 주원료는 PHMG 등이고, 이번 사건 살균제의 주원료는 CMITㆍMIT로, 주원료의 성분, 체내 분해성, 대사물질 등이 전혀 다르다”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활용하거나 응용해 개발ㆍ출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제품이 개발ㆍ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ㆍ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SK케미칼ㆍ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와 옥시 등이 제조ㆍ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는 전혀 다른 상품인 만큼 공범으로 묶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는 복합 사용 피해자들의 인명 피해 원인을 구체적으로 규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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