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없는 건설산업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관계부처와 함께 건설경기 회복 지원(3월28일), 부동산PF 연착륙(5월14일), 주택공급 확대(8월8일), 공사비 안정화(10월2일) 및 건설산업 활력제고(12월23일) 방안과 같은 주요 대책을 발표하고, 유동성 공급 확대와 미분양 해소 등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재원과 거시경제 여건 악화 속에서 건설경기 침체를 무난히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외에도 이러한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 주체 중 하나가 바로 공제조합이다. ‘공제’란 ‘힘을 합하여 서로 돕는다’는 뜻으로, 공제조합은 같은 직업이나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회비를 내어 만든 조직이다. 건설사업자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도입된 우리나라의 건설공제 제도도 어느덧 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1957년 당시 건설업체의 난립으로 인한 부실시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하자보수보증금 예치 제도’가 영세 건설업체들에게 큰 자금 압박을 주게 되었고, 건설업계의 보증금으로 예치된 자금을 활용한 융자 혜택도 대형 건설업체 위주로만 이루어져 영세 중소업체의 자금 부담은 더욱 커져갔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업계와 정부는 수차례 논의를 거쳐 그간 예치된 보증금을 기금으로 하는 ‘건설공제조합’을 1963년에 설립했고, 공제조합이 보증한 공사에 대해서는 계약보증금과 하자보수보증금을 징수하지 않게 하고, 융자 혜택을 제공하여 영세 건설업체는 자금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설립 초기 계약보증, 하자보수보증 및 융자에 국한됐던 공제조합의 역할은 건설산업의 성장과 함께 확대되었다. 해외건설 수주 확대와 입찰제도 변화에 따라 취급가능한 보증의 종류를 확대하고, 수급 사정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건설자재를 조합이 미리 비축하여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건설자재의 공급·알선 업무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문건설사업자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하여 건설공제조합에서 전문건설공제조합과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이 분화되었고, 현재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3개 공제조합의 총자본금은 14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공제조합은 조합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건설산업의 큰 변화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가며 발전해왔다. 현재의 위기를 맞고 있는 건설산업이 다시 한 번 위기를 극복하고, 이와 같은 위기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건설업계의 자구노력이 필수적이며, 건설업계의 자구노력 주체인 공제조합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Basic)’이다. 조합원에 대한 보증·융자와 같은 고유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건설공사 감소에도 불구하고, 타 보증기관에서 인수하지 않는 공사에 대한 보증을 공제조합이 취급하며 보증발급을 늘리고,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지방 건설사업장을 대상으로 한시적 수수료 할인을 시행하는 점과 건설안정 특별융자를 실시하는 점 등은 건설산업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건설산업의 환경 변화에 맞게 공제조합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과거와 달리 건설사업은 PF사업 위주로 진행되고, 자금조달 과정에서 건설사의 책임준공, 연대보증 등 신용보강이 주로 활용되는 등 건설금융 기법이 다양화되고 있다. 대출을 받는 주체는 시행사이지만 건설사도 신용보강을 제공하기 때문에 채무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현행법 하에서 공제조합은 조합원의 채무를 대상으로만 보증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사의 신용보강 여부와 무관하게 PF대출에 대한 보증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공제조합도 PF대출 보증 취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공제조합은 건설업계의 대표 금융기관인 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보증상품과 금융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금번 PF위기 시에 새롭게 출시한 책임준공 보증과 같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출시한다면 개별 조합원은 물론 건설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 갑진년(푸른 용의 해)의 시간이 지나가고 2025년 을사년(푸른 뱀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푸른색은 활력 있는 자연과 생명력을 의미한다. 또한, 뱀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거치기에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혜로운 동물로 여겨진다.
건설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공제조합이 건설업체가 기댈 버팀목 역할을 든든히 수행할 필요가 있다.
지혜와 신중함, 변화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뱀처럼 정부와 업계, 그리고 공제조합이 힘을 합쳐 눈앞에 닥친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건설업이 우리 국가 경제의 주요 성장동력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익진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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