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오진주 기자] “애플이 아이폰 15에 썼던 부품을 16에서 빼긴 쉽지 않죠.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한번 저희의 소재를 쓴 브랜드는 좀처럼 뺄 수 없습니다.”
선진뷰티사이언스(선진뷰티)의 고객은 샤넬과 로레알 등 해외 유명 뷰티 브랜드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국내 대표 기업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선진뷰티사이언스 연구원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선진뷰티사이언스 |
◆ 기술력 바탕으로 K-뷰티 ‘원스톱 밸류체인’ 구축
선진뷰티의 전신은 선진화학이다. 계면활성제를 만들었던 선진화학을 창업주의 장남인 이성호 대표가 물려받으며 뷰티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이 대표는 K-뷰티의 ‘원스톱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소재 생산부터 제조자개발생산(ODM)까지 선진뷰티가 맡아 한다. 자체 뷰티 브랜드 ‘아이레시피’도 갖고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선진을 찾는 건 기술과 제조력 때문이다. 선진뷰티는 세계 최초로 실리콘을 이용하지 않은 워터드롭 제형화 스킨케어 소재 등 200여가지의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과 중국 시장에서 자연 유래 성분 화장품이 주목받으면서 화학성분이 아닌 천연 마이크로비드 등 고부가가치 소재가 매출 증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진뷰티의 지난해 1~3분기 영업이익은 102억원으로 이미 전년도 수치를 넘기며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선진뷰티의 기술·제조력을 높인 건 스마트 팩토리다. 선진뷰티는 2019년 경기 안산공장을 충남 서천시 장항읍으로 옮겼다. 당시에는 규제 때문에 이전을 결정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이 대표는 “그때는 화장품 산업이 첨단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증설도 어려웠고, 경기도에서 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해 옮기게 됐다”며 “주변에선 수도권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걱정했지만, 장항공장에 투자하니 인재도 오고 공장도 늘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충남 서천군 선진뷰티사이언스 장항공장 모습/사진=선진뷰티사이언스 |
약 4만6300㎡(1만4000평) 부지에 조성된 장항공장은 스마트 팩토리로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직하형 수직 이송 방식(Top-down)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스템이다. 기존에 수평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아닌 수직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수평 방식은 분체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배관을 막아 유지 보수 비용이 증가하거나 인력이 투입돼야 하지만, 수직 방식은 분체의 특성상 배관 막힘이 적어 수율을 높일 수 있다.
이 대표는 관행적으로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공장 이전을 계기로 스마트 팩토리를 현실화했다. 그는 “지금 도전하다가 잘 안되면 그냥 실패하는 거고, 지금 안 하면 천천히 실패할 것 같았다”고 당시 떠올렸다.
장항공장은 폐수도 자체 처리한다. 이 대표는 “화장품 소재는 자동화한 공정마다 폐수 라인이 있어야 한다”며 “과거 폐수처리 업체에 맡길 때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선진뷰티사이언스 장항공장에 각종 장비가 설치돼 있다./사진=선진뷰티사이언스 |
◆ “올해 뷰티업계 경쟁력, 美 규제에 달려있어”
장항공장은 선진뷰티만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뷰티업계는 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전세계 최대 뷰티 시장인 미국에서 화장품 수입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바로 OTC(일반의약품) 규제다. 이전에는 특별한 규제 없이 수입 화장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자외선 차단제와 여드름 완화 효과가 있는 화장품, 비듬 샴푸, 안티에이징 크림 등 의사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화장품을 일반의약품을 분류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규제 강화와 K-뷰티에 대한 미국 회사들의 견제와 맞물려 있다. 일부 유럽과 동남아시아 국가도 미국 규제를 가이드라인으로 삼는 만큼 앞으로 OTC 규제에 대응하는 기업만이 수출 경쟁력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미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아마존에서 제품을 뺀 곳도 있다”며 “브랜드사가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제품을 제조사에게 알리지 않고 미국에 판매한다면 ODM사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6월 선진뷰티는 장항공장 내에 추가로 완공하는 ODM 공장을 OTC 전용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미 해외 브랜드와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고객사를 대상으로 한 OTC 컨설팅도 함께 운영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선진뷰티가 이처럼 자신감을 보이는 건 국내 업계 최초로 FDA 현장실사를 무결점(NAI)으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회사와 선진뷰티가 유일하다.
선진뷰티는 FDA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제약회사의 컨설팅도 받았다. 이 대표는 “FDA에서는 미생물 오염과 교차 오염을 가장 경계한다”며 “이를 위해 공정마다 크로즈드(폐쇄) 라인을 만드는 건 비용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이같은 과감한 결정을 한 이유는 수출 물량 때문이다. 선진뷰티 매출의 83%는 해외에서 나온다.
그중에서도 최근 한국 뷰티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국에서 매출 성장률이 가장 높다. 중국 로컬 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져도 결국 한국 회사에서 만든 소재를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40개 이상 국가에 포진해 있어 위험도 분산할 수 있다. 이 대표는 “한 해도 수출액이 줄어든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환율로 인한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K-뷰티 시장이 커질수록 경쟁자는 늘고 규제는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 대표는 이전처럼 K-뷰티의 인기에 기대 무조건 가져다 파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는 “고객사에게 선진뷰티의 소재와 기술은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게 아니다”라며 “철저한 대상국 분석으로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파고(波高)를 넘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이성호 선진뷰티사이언스 대표는?
연세대 생화학 학사와 미국 예일대 화학 석사, 텍사스대 경영학 석사(MBA),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박사 등을 졸업한 화학 전문가다. 아주대 나노생명공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냈으며, 대한화장품학회 국제홍보 이사와 ISFCC(국제화장품학회) 회장단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진주 기자 oh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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