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금 리스크 적어 경쟁 과열
경쟁률 ‘200대 1’ 넘기기 일쑤
‘제한 공모’ 등 제도개선 시급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공공건축 설계공모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는 한정된 자원의 비효율적 운용과 비용 부담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심사를 앞둔 ‘신당역 공영주차장 주차타워 건립 설계공모’에 218개사, ‘서림동 복합청사 건립 설계공모’에 277개사, ‘중곡동 공영주차장 복합개발사업 설계공모’에 206개사가 각각 등록을 마쳤다.
작품 접수 건수도 ‘세종로공원 및 상징조형물 조성 설계공모’에 32개사, ‘신월1동 주민센터 건립 설계공모’에 38개사 등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같은 공공 건축시장의 과열 양상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더욱 심화했다는 지적이다. 공공사업은 민간과 달리 자금 조달 부담이 덜하고, 사업 진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용역비 수금도 원활해 이른바 ‘미수금 리스크’가 적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공공시장 참여자들이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업계의 자원이 심각하게 소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설계비 5억원 미만의 공모 준비에는 인건비와 재료비, 장비 운용비 등을 포함해 최소 1000만~2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중견 건축사사무소 A사 관계자는 “프로젝트별로 1개 팀이 길게는 한 달간 투입되는데, 단일 공모에 수십개사가 경쟁하면서 업계 전체 투입 비용이 공모에 걸린 용역비를 웃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건축산업 전반의 체력을 고갈시키는 주요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고 꼬집었다.
과도한 공모작 제출에 따른 심사의 질적 저하도 우려된다. 현상설계 심사에 다수 참여한 사립대 교수 B씨는 “수십개에 달하는 공모안을 엄정하게 심사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독특한 입면을 무리하게 채택하면서 내실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설계공모 의무화 제도 역시 현장과의 괴리가 있다는 평가다. 설계 품질 향상이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업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서다.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설계용역비 1억원 이상 사업의 경우 의무적으로 설계공모를 거쳐 설계사를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C사 임원은 “설계에서 발생한 손실을 CM 수익으로 근근이 보전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공모 참여 횟수 제한 등 실질적인 제도적 해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참가 제한보다 기준액 상향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D사 관계자는 “1억원이라는 현행 기준은 너무 낮다”며 “가격 입찰과 간이 공모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부족한 업체들을 위한 보완책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E사 관계자는 “존폐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부터 구제해야 한다”며 “설계비 3억원 미만의 설계공모에 신진건축사만 참여하도록 하는 조달청의 제한 공모 방식을 여타 공공 발주처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건축설계업계 관계자는 “무분별한 경쟁이 지속될 경우 건축산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공공건축의 품질 향상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업계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강구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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