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 “내란혐의 증거 인멸 우려”
계엄 후 47일만… 수의 입고 머그샷
공수처, 10여일 수사 후 檢 이관
검찰은 보완 수사 후 기소 추진
尹, 구속적부심 청구땐 미뤄질 듯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12ㆍ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데 이어 구속된 것은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윤 대통령의 구속에 따라 비상계엄 사태 수사도 정점으로 치닫게 됐다.
이에 흥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정문과 유리창을 깨부수며 법원에 난입해 집기와 시설물을 파손하는 등 사실상 ‘폭동’을 일으키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19일 오전 서부지법 창과 외벽 등이 파손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전날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해 영장심사를 한 뒤 이날 오전 3시쯤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지 47일 만이자, 공수처 체포 이후 나흘 만이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내 구인 피의자 거실에 머물러 왔던 윤 대통령은 구속영장 발부에 따라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수의를 착용하고 ‘머그샷’을 찍는 등 구치소 입소 절차를 정식으로 밟았다.
차 부장판사는 “피의자(윤 대통령)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전후로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을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조사에 불응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점이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기본적으로 구속 수사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일 뿐, 유무죄 판단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을 기초로 법원이 범죄사실이 어느 정도 소명됐는지 들여다보고 구속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신병 확보를 통해 수사의 동력을 한층 더 얻을 수 있게 됐다. 반대로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그러나 ‘공수처가 체포ㆍ구속영장을 서부지법에 청구한 것은 관할 위반’이라며 그동안 공수처 조사에 응하지 않았던 윤 대통령은 이날도 조사에 불응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계속해서 조사에 불응할 경우 강제인치(강제연행)나 구치소 방문 조사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위헌ㆍ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윤 대통령이 야당의 특검ㆍ탄핵 압박으로 정치적 수세에 몰리자 위헌ㆍ위법적인 비상계엄을 통해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는 게 공수처의 판단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는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는지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다.
김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진우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하고,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도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윤 대통령은 전날 영장심사에 직접 나와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고유한 통치행위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행사를 내란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출석 요구에 세 차례 불응하자 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두 차례 체포 시도 끝에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 당일 공수처로 압송돼 10시간가량 조사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질문에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한 채 ‘체포 여부를 다시 판단해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16일 윤 대통령의 청구를 기각했고, 다음날 공수처는 서부지법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 기간을 포함해 최대 20일간 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게 된다.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기소권이 없는 만큼 10일가량 윤 대통령을 수사한 뒤 검찰에 기소를 요구하면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아 보완 수사를 거쳐 다음달 5일 전후로 기소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공수처는 판ㆍ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갖고 있다.
만약 윤 대통령 측이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하면 기소 시점은 다소 미뤄질 수도 있다. 피의자가 체포적부심이나 구속적부심을 청구한 경우, 법원이 수사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접수한 때부터 반환할 때까지의 기간은 체포ㆍ구속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 측이 지금까지 가능한 한 거의 모든 법적 수단을 이용해 수사 절차에 불복해온 만큼 이번에도 구속적부심을 청구해 구속의 정당성을 다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구속된 인사는 윤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11명으로 늘었다. 김 전 장관을 비롯해 당시 비상계엄에 관여했던 육군 참모총장 등 군 주요 장성과 조지호 경찰청장 등 주요 피의자 10명은 이미 내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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