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자회사 통한 상호주 의결권 제한 카드로 경영권 방어
MBKㆍ영풍 “외국법인엔 상법 적용 안돼”…법적대응 예고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현장./사진: 고려아연 제공 |
[대한경제=강주현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상호주 의결권 제한’ 승부수로 불리했던 판도를 뒤집고, MBK파트너스ㆍ영풍 연합의 이사회 장악 시도를 저지한 것이다.
최 회장 측이 상법상 ‘상호주 제한’을 명분으로 영풍 지분 과반 이상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임시주총 승부처로 꼽혔던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과 이사 수를 19명 이하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안이 모두 통과되면서다.
다만 MBKㆍ영풍 연합은 이런 조치가 불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양측간 경영권 분쟁도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 수 상한 설정 등의 안건을 처리했다.
최 회장은 임시주총 전날 저녁, 호주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통해 영풍 지분 10.33%를 575억원에 매입하는 기습카드를 꺼내들었다.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 상법 369조 3항을 근거로 영풍의 의결권(25.42%)을 제한한 것이다.
상법 369조 3항에 따르면 A사가 단독 또는 자회사ㆍ손자회사를 통해 다른 B사의 주식을 10% 이상 보유한 경우, B사가 가진 A사의 지분은 의결권이 없어진다.
애초 임시주총의 승기는 MBKㆍ영풍 연합이 잡고 있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합산 지분율이 40.97%로 우호지분을 더한 최 회장 측 지분율(34.35%)보다 높았고, 지난 21일 법원이 MBKㆍ영풍 연합이 신청한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가처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날 조치로 이날 의결권 효력이 있는 MBKㆍ영풍 측 지분이 40.97%에서 15.55%로 축소됐고, 결국 표 대결에서 패배했다. MBKㆍ영풍 연합은 이날 임시주총에서 14인의 신규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켜 과반을 확보해 이사회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현재 12명인 고려아연 이사회는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을 제외한 11명이 최 회장 측이다. 이사 수가 제한됨에 따라 MBKㆍ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이사회 장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주식 1주당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0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식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생기며, 이를 특정 이사 후보 한 명에게 집중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으로도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게 가능하다. 소수주주들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의결권이 제한된 MBKㆍ영풍 측은 SMC가 유한회사이자 외국회사이기 때문에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영풍 대리인인 이성훈 변호사는 주총 발언을 통해 “고려아연 최대 주주로서 50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발행주식 25.4%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왔다”며 “어제 저녁 6시 공시 이후 전자투표가 마감되고 주주로서 관련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지위에서 의결권이 제한되니 강도당한 기분”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도 임시주총 전 기자들과 만나 “의결권도 없는 주식을 575억원에 매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집중투표제 도입이라는 목적 하나를 위해 회사 돈을 쓴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MBKㆍ영풍 측은 임시 주총 효력 정지 가처분 및 상호주 의결권 제한 무효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임시주총 관련 입장문을 통해서는“고려아연이 자기주식 공개매수로 2조원의 부채를 떠안고, SMC가 575억원을 소모하는 등 회사와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며 “오늘 임시주총의 위법적인 결과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 및 원상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법정으로 넘어가게 된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한편 오전 9시 예정이던 주총은 중복위임장(4750주) 확인 문제로 6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오후 1시 52분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의장으로서 개회를 선언했으나, 출석 주식수 공개 요구가 이어지며 다시 지연됐다. 최종 확인된 출석 주식수는 영풍 의결권이 제한된 1145만9974주였다.
주총장 입구에선 고려아연 노조가 “기업사냥꾼 MBK OUT”, “소수주주 무시하는 MBKㆍ영풍을 규탄한다”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고려아연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됐던 현대차(지분율 5.76%)는 이날 주총에 불참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경영권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강주현 기자 kangju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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