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논란에 불복ㆍ취소 사태까지
업계 “평가기준 객관성 확보 시급”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정부와 지자체 등이 주관하는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를 두고 공정성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공모에 낙선한 업체들이 지침 위반과 표절 의혹, 심사위원과 당선사 간 유착 관계 등을 사유로 결과에 불복하면서다.
19일 충북 단양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다누리 커뮤니티 플라자 조성사업 설계공모’에 접수된 6개 공모안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이 공모에는 설계비 13억원이 책정됐다.
건축 전문가 6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최종 경합을 벌인 A사와 B사는 5차 투표까지 3대3 동점을 이어갔으나, 6차 투표에서 4대2로 승부가 갈렸다. 심사위원들은 A사가 제출한 공모안이 사업수행 능력과 형태, 배치, 대지 이해도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탈락한 B사는 당선작이 대지경계선을 초과했다며 반발했다. 이어 “부지 경계나 면적을 초과하거나 임의 조작하는 것은 공모 지침상 실격 사유”라고 지적했다. B사는 군의 조치가 미흡할 경우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성 논란은 표절 시비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심사한 ‘충남예술의전당 건립 국제지명설계공모’에서는 당선작의 사선형 지붕 디자인이 유럽의 한 콘서트홀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3자 민원 형태로 제기됐다. 46억원대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파장도 컸으나, 발주처인 충남도는 “현대 건축의 보편적 경향”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전주 전시컨벤션센터 설계공모’에서도 당선작의 외관이 런던의 한 유명 건축물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최서연 전주시의회 의원을 통해 제기돼 논란이 불거졌다.
공정성 시비가 논란을 넘어 당선 취소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제주도교육청이 지난해 심사한 ‘아라ㆍ월평초중학교 신축공사 설계공모’에서는 심사위원과 당선 사가 과거 용역을 함께 수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설계비 23억원이 책정된 이 사업은 제주도교육청이 주관한 역대 건축설계 공모 중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청이 재추진한 설계공모에서도 잡음이 이어졌다. 재공모 당선 사가 심사위원의 전 소속 업체와 약 1년 전 다른 설계공모에 공동 출품해 입상한 이력이 드러나면서다.
이에 이의를 제기한 한 업체가 소송을 제기, 제주지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난해 9월 기각 처리됐으나 대형 공모에 뒤따른 공정성 시비는 건축업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들은 심사위원 선정부터 평가 방식까지 제도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A사 임원은 “발주처마다 제각각인 심사위원 관리 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며 “중앙부처 차원의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최소 5년간의 심사위원회 참여 이력을 의무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가기준의 객관성 확보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대형 건축사사무소 B사 임원은 “심사위원회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결과를 불복하는 사례가 끊이질 않는 것”이라면서 “기술성과 경제성 등 정량적 지표를 적극 도입해 정성평가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의제기 처리 절차의 제도화도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C사 대표는 “탈락사의 이의제기가 발주처의 자의적 판단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또 다른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며 “독립된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심사 내용을 검토하고, 결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추후 유사 사례 판단에 활용하는 등 사후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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