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언주로칼럼] 각자도생의 시간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5-02-26 21:32:35   폰트크기 변경      

심화영 산업부 IT팀장

지난 24일(현지시간) 새벽 필리핀 막탄세부공항. 총알택시 운전사는 좁은 골목길을 질주한다. 오토바이와 개들이 불쑥 나타나는 위험천만한 도로를 가로지르는 그의 눈빛에서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읽힌다. 기자가 머물고 있는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식민지가 됐고, 1946년에 독립했다. 당시 영어가 공용어가 됐지만 정치ㆍ경제적 불안은 심화됐고, 2000년과 마찬가지로 다시 찾은 2025년의 이곳은 여전히 중저소득 국가에 머물러 있다.

세계 질서를 흔드는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신제국주의’를 연상케 한다. 필리핀과 미국과의 관계는 양면성이 있다. 무역ㆍ원조ㆍ군사협력에서 이점이 있지만, 경제적 의존성이 자립적 발전을 저해한다. 미국의 ‘상호관세’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로 표적을 넓히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비관세 장벽이 높은 국가로 중국, 인도, 인니, 필리핀, 태국을 꼽았다. 미국의 우방인 한국은 이들 나라보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상호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은 상당할 것이다.

철강ㆍ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는 기정사실이 됐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핵심 수출품목도 위험에 노출됐다. 당장 연간 수출 감소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 재편 비용도 늘어난다. 멕시코, 캐나다 생산기지를 통한 우회 수출도 막힌다. 그러나 한국이 맞닥뜨린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관세 장벽이 아니다. 관세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란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의 한 단면일 뿐이다.

현재 한국기업들의 대응은 주로 미국 현지 투자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제철의 10조원 규모 미국 제철소 건설 계획이나 배터리 기업들의 북미 진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기업들의 개별적 대응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행히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지렛대’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고, 전기차ㆍ배터리는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과 생산능력은 한국이 가진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기술 경쟁 속에서 핵심 산업의 공급망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전시 최대 지원국임을 내세워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지분 50%를 요구했다. 최약체일 수밖에 없는 3년째 전쟁 중인 국가와의 희토류 협상과 종전 협상, 북한-한국 간 줄타기를 보면서 더는 국제질서에서 초강대국의 순수한 아량을 기대할 수 없다고 느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감 있는 대응이다. 중국은 다자주의를 내세우며 우방을 모으고, 일본ㆍ유럽연합(EU)도 발빠른 고위급 외교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각자도생’이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고립주의’와는 다르다. 오히려 더욱 전략적으로 미국과는 우리의 첨단기술산업 우위를 통해 더 긴밀한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분야별로 새로운 파트너십 상대도 필요하다. 단순한 생존전략을 넘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