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물감을 손에 쥐고 평생을 꿋꿋하게 불빛처럼 살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참선을 통해 안목이 열리고 불이(不二)를 펼치는 신명나는 잔치 같은 것이다. 번뇌로 가득 차 보였던 세상이 알고 보면 온전한 부처님의 세계라는 게 화엄사상의 이론이라면, 그림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속풀이 마당을 연출한 그였다. 실제로 화면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넘실거린다. 칠흑같은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현대사회의 무거운 어깨들을 진정 위로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품과 고독을 어루만지는 ‘빛’이 필요한 시대에 K-화단의 간판급 ‘빛의 화가’ 김성호(64)가 붓끝으로 어둠을 깨부수는 이유다. 그렇게 화가로 40년의 긴 시간을 살아온 그를 또 한 번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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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화백이 13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갤러리 전시장에서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갑 기자 |
12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개막한 ‘새벽 빛을 품다’전은 김성호 화백이 화업 40년을 맞아 도심 불빛과 여명에 대한 감성의 실타래를 뽑아내는 특별한 자리다. 경기도 양평 서종 작업실에 파묻혀 죽어라 그림에만 매달려 대차게 꾸린 ‘예술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김 화백은 “이번 전시는 정치·사회적으로 혼탁하고, 경제적으로 부대끼는 삶에서 ‘행복한 빛’를 퍼뜨리기 위한 시도”라고 했다. 탄핵정국의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화로에서 막 꺼낸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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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화백의 '새벽-한라산' 사진= 토포하우스갤러리 제공 |
영남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온 김 화백은 6년 전 깊은 산자락과 북한강 인근에 위치한 경기도 양평 서종으로 찾아들었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환한 빛으로 치환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가 빛을 그리기 위해 지베르니 정원을 가꾼 것처럼. 그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캔버스 위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거기서 불빛에 이글거리는 야경 만큼 몸을 낮춰서 작업을 했다. 땅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붓질을 이어갔다. 그 순간 파라다이스 같은 환희가 넘쳐 흘렀다. 희미한 불빛이 잠든 도심을 깨운다는 사실을 지각했다.
사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우리가 유용한 것만 지각할 뿐이다. 각성을 하고 새로운 눈을 가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신의 영역을 예측할 수 있다. 김 화백도 별빛 그 너머의 진정한 지각을 보았을 것이다. 신의 소리, 생명의 소리다. 아마도 김 화백의 도심 불빛의 생명력도 그런 것일 게다.
2층 전시장을 채운 20여 점의 ‘새벽 그림’은 문학적 상상력과 회화적 에너지를 단순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응축한 대작들이다.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 불빛 아래 일렁이는 해변, 자동차가 꼬리를 문 도로,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조명이 깜박이는 홍콩 마천루 건물, 어둠을 가로지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이 보는 이로 하여금 빛과 어둠이 상존하는 아스라한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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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화백의 '새벽-제주' 사진=토포하우스갤러리 제공 |
미술 평론가와 갤러리스트들은 “김 화백은 화업 내내 컴컴한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두레박’을 건져올리는 ‘빛의 마술사’ 역할을 자처한 아티스트”라고 한목소리로 격찬했다. 어두운 도심, 팽팽한 긴장감, 넓게 퍼져 있는 불안감 등 현대사회의 단면만을 골라 화면 깊숙이 채워넣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고종환 씨는 “현대인의 삶과 중첩된 물질 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황폐해져가는 자신의 감성을 치유하듯 일종의 자가 처방전을 화면에 담아내려 한 김 화백의 미학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빛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빛(희망)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내려 애쓰는 작가의 열정이 도드라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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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화백의 '새벽-부타페스트' 사진=토포하우스갤러리 제공 |
오로지 붓끝을 ‘희망 미학’의 극점으로 몰아붙이는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역작을 구상할까.
김윤섭 예술나눔 재단법인 ‘아이프칠드런(AiF children) 이사장은 “김 화백의 경우 빛을 품은 새벽, 평화로움과 고요함, 빛의 역동성과 분주함을 화면에 담아냈다”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벽 빛줄기가 도심의 건물과 해변 등에 마술처럼 번지는 짜릿한 지점을 잡아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검정 파랑 노랑 회색 등 다양한 색감으로 풍경을 스케치한 다음, 빛줄기와 시간의 빠른 템포를 버무린다. 원경, 중경, 근경의 구도는 물론 하늘 위에서 보는 듯한 시점과 넓은 화면 대부분을 과감히 어둠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자연과 불빛이 하나가 된 풍경들은 그대로 화폭 속에 이야기로 들어앉는다. 중첩된 굵은 선묘와 감각적이면서 자유분방한 여백의 미도 매력적인 요소다.
미술시장 전문가 이경택 씨는 “형상만을 보려는 사람들은 김 화백의 그림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며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를 포착하려 심혈을 기울인 게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라고 했다. 그의 그림이 묘한 향수나 추억, 고독감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김 화백 작품들을 소설이나 시처럼 여운이 묻어나는 것처럼 문학적 상상력을 최대한 응축했다는 평가도 눈길을 끈다. 문학박사 오현금 토포하우스갤러리 대표는 “단순한 외적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니 만큼 스피드한 리듬감과 스토리를 확장하는 것이 김 화백 미학의 백미”라고 강조했다.
미술계 인사들이 대체로 그의 작품을 ‘희망의 후광’과 ‘여명의 리듬감’, ‘새벽을 여는 시적 아우라’라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화백이 작품 앞에서 전시회 때만다 던진 한마디가 여전히 긴 여운으로 남는다. “하필 새벽의 빛에 관심을 갖는 이유요? 어두운 것을 뚫어주기 때문이죠.”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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