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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건설산업 재탄생을 위한 ‘고귀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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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3-31 04:00:14   폰트크기 변경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개최한 ‘건설산업 재탄생’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건설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좋은 제안들이 발표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세미나 내내 필자의 머릿속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건설산업 재탄생이라는 희망적인 주제를 두고 죽음이라는 불경한 단어를 꺼내 들어 송구한 마음이다. 하지만 순서적으로 따져봐도 재탄생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현재 상태가 그대로 살아있고 죽지 않았는데, 다시 태어날 수는 없다. 건설산업의 재탄생은 건설산업의 낡은 것에 대한 죽음 또는 청산을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청산되어야 하는 낡은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부실공사, 안전사고, 투명성ㆍ공정성 문제, 낮은 생산성 등이 있다. 건설산업에 이런 낡은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혹시 정부의 규제와 처벌이 약했던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재탄생을 위해 건설산업은 더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원하는 것일까?


필자는 주요 원인 중 하나를 건설산업의 회복탄력성(resilience)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회복탄력성이란 단순히 문제해결 능력이 아니라 그다음 단계로 레벨업(level up)까지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 건설산업은 건설산업이 지닌 문제를 스스로 치유하고 그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건설산업이 이런 문제들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외부적인 힘(外力)이 회복탄력성을 대체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규제 또는 처벌이라고 부른다. 어떤 산업에 규제와 처벌이 많다는 것은 그 산업의 회복탄력성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불합리한 규제나 처벌은 당연히 철폐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건설산업의 회복탄력성이 대칭적이었는지에 대한 검증은 충분하였는가? 건설산업은 정부, 제도, 발주자가 건설산업의 ‘이상형’이 되기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건설산업 스스로가 이에 어울리는 ‘이상형’인지도 동시에 자문(自問)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건설산업의 회복탄력성이 약해도 ‘다행히’ 건설산업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필수산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건설산업을 향한 시선과 처우는 더욱 혹독해질 것이다. 호경기(好景氣)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건설산업의 회복탄력성 확보를 위해서는 산학연관 관련 주체들의 협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건설산업의 주도적인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외부적인 힘이 건설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오랜 기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건설산업 재탄생을 주도하는 혁신적인 선도기업들도 등장해야 한다. 반드시 대기업일 필요는 없다. 규모에 상관없이 재탄생을 위한 혁신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선도기업 한 줌이면 시작으로 충분하다. 정부는 선도기업들이 즉, ‘모난 돌’이 ‘정을 맞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안정적인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건설산업 재탄생을 위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건설경기 ‘빙하기’를 맞이하여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재탄생이라는 ‘한가로운’ 거대 담론을 논하는 것이 눈치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너무도 안타깝지만, 건설경기 그 자체를 건설산업이 호전시킬 묘책은 마땅치 않다. 지금 상황에서 건설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자구책은 어떻게든 ‘빙하기’를 잘 견뎌내고, 그다음 생존과 도약을 위한 내공을 축적하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빙하기’는 주기적으로 찾아올 것이며, 건설산업의 재탄생은 건설경기와 상관없이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결 해야 할 과제이다.

건설산업의 재탄생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죽을 만큼의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건설산업의 재탄생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우리 건설산업에게는 두 개의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현재의 모습 이대로 고사(枯死)할 것인지? 아니면 재탄생을 위한 ‘고귀한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 건설산업 재탄생은 이런 엄중한 질문을 우리 건설산업에게 던지고 있다.


김한수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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