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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선이다.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굳건함과 회복력을 확인한 결과라는 국내외 평가가 잇따르면서 계엄사태로 충격을 받았던 국민들에게 다소 위안이 되고 있다. 그런데 3년여 만에 다시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니 씁쓸함이 밀려온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막막함도 함께한다.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라는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한 대목처럼 배신감을 느낀 국민이라면 ‘이번에는 잘 뽑을 수 있을까’라는 자괴감도 고개를 들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50대 중반에 접어든 기자가 직접 겪은 11명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는 말로가 비참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시해되거나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가 2명이고, 탄핵으로 임기를 다하지 못한 이가 2명이다. 감옥에 간 이는 5명이나 된다.
지도자는 그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실패한 대통령을 선택한 이는 바로 국민이다. 하지만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유심히 살피고 들어보려고 해도 ‘노이즈’가 너무 많다. 언론은 신뢰를 잃었고 그 자리를 유튜버가 대신했다. 법사와 도사가 정사에 관여하고, 광장에는 목사와 강사가 판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가짜뉴스, 극단주의와 혐오가 확산된다. 정책이나 됨됨이 보다는 ‘내 편이냐, 네 편이냐’로 일찌감치 선택이 결정된다.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제대로 된 후보를 국민 앞에 내놓기보다는 역시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따지는 데 혈안이다. 그렇게 치고받은 후 후보가 결정된다. 이렇다 보니 국민들 사이에서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게 선거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선택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 제시는 가능하지 않을까. 성공하거나 인기없는 대통령이 될지라도 임기를 제대로 마치고 감옥에 가지 않는 수준의 대통령을 선택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
대답은 ‘합리주의’라는 단어로 압축하고 싶다. 이성에 근거해 생각하고 세계를 보는 사람이라면 미신이나 ‘유사종교’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에 유포되는 괴담이나 가짜뉴스를 신봉하지 않을 것이다. 각료나 공식 참모가 아닌 비선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며 계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 나타났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한다. 미신이나 비선 같은 단어가 나오는 순간 가차없이 배척해야 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품성은 다양하다. 리더십, 식견, 혜안, 지식, 결단력, 도덕성 등 너무 많아 이를 다 갖춘 이를 찾기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합리주의에 주목하는 이유는 달리 말해 상식적인 수준의 사고만이라도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정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쉬운 일 같아도 지금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떠올려보면 쉽지만은 않은 기준이다. 상식적인 사람인지 ‘제대로 보자’라고 당연한 소리를 당부해야 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김정석 정치사회부장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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