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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7일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사옥에서 열린 SKT 사이버 침해 사고 관련 데일리 브리핑에 참석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SKT |
위약금 면제 형평성 고려 및 법적 검토 필요…SKT 이사회 논의 중
[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유심 해킹 사태가 SK텔레콤을 창립 이래 최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위약금 면제’ 논란은 회사를 진퇴양난에 빠뜨렸다. 면제를 단행하면 점유율 붕괴라는 ‘시장 리스크’를, 거부하면 신뢰 상실이라는 ‘평판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일 서울 중구 SKT 본사에서 열린 해킹 사태 발생 19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이날 일일 브리핑에 직접 참석해 “최근 SK텔레콤 사이버 침해사고로 고객과 국민에게 불안과 불편을 초래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 회장은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해 준 2400만 고객에게 감사하다”며 “고객 신뢰는 SK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였고 앞으로도 존재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SKT의 해킹 사태 대응이 아쉬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유심 확보계획을 고려하지 않은 유심교체 발표로 고객이 극심한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며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고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지겠다는 조건부 발표는 뼈저린 반성의 태도는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SK텔레콤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위약금 면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최 회장은 국회의 위약금 면제 요구에 대해 “이용자 형평성 문제와 법적 문제를 같이 검토해야 한다”며 “현재 SKT 이사회가 논의 중이고 논의가 잘 돼서 좋은 해결방안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저는 이사회 멤버가 아니라서 드릴 말씀이 여기까지다”라고 했다. 그는 8일 열리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와 대미 통상 관련 행사 참석을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이 ‘위약금 면제’에 대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시장 점유율 붕괴에 대한 현실적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달 SK텔레콤에서 타 통신사로 이동한 고객은 23만7000여명으로 지난 3월 대비 약 87% 증가했다. SKT에서 KT와 LG유플러스로 이동한 가입자는 각각 9만5953명, 8만6005명에 달한다.
현재 무선 시장 점유율 40%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SKT는 약정위약금까지 면제될 경우, 고객 이탈이 통제 불능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실제로 해킹 사고 이후 일주일 만에 9만명 이상이 SKT를 떠났고, 신규 가입 중단까지 겹치면서 점유율이 30%대로 추락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SK텔레콤 약관에는 ‘회사의 귀책사유로 해지 시 위약금 면제’ 조항이 있으며, 국회 입법조사처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용자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가입자마다 다른 약정과 단말기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선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피해 사실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SK텔레콤은 이미 유심 보호 서비스와 무료 유심 교체 등 선제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며 “여기에 위약금까지 면제하도록 압박한다면 이는 통신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흔드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고객 이탈이 가속화되자 지난 5일부터 전국 대리점인 ‘T월드’에서 신규 가입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다만 일반 판매점에서는 여전히 신규 가입 및 번호이동이 가능한 상태다.
<최태원 회장 사과문 전문>
최근 SK텔레콤의 사이버 침해 사고로 인해 고객분들과 국민들께 많은 불안과 불편을 초래했습니다. SK그룹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매장까지 찾아와 오래 기다리셨거나 해외 출국을 앞두고 촉박한 일정에 마음 졸이신 고객분들의 불편은 더욱 크셨습니다.
또 지금도 많은 분들이 피해가 없을지 걱정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특히 사고 이후 일련의 소통과 대응이 미흡했던 점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고, 이는 저를 비롯한 경영진 모두가 뼈아프게 반성할 부분입니다.
고객뿐만 아니라 언론, 국회, 정부기관의 질책은 마땅한 것이라 생각하며, 이를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일단 정부 조사에 적극 협력하여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고객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우선 저희를 믿고 유심보호서비스를 가입해주신 2400만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심 교체를 원하시는 분들도 더 빠른 조치를 받으실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이와 별도로 SK 전 그룹사를 대상으로 보안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보안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보보호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객관적이고 중립적 시각에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해 일선에서 애써주고 계신 T월드, 고객센터, 정부 및 공항 관계자, 그리고 회사 구성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객의 신뢰는 SK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SK그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살피겠습니다.
다시 한번, 불편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문제 해결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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