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에 다리 놓을 인물” 평가
선출되자마자 ‘한국 방문’ 예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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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미국 출신의 로버트 F.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로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 로이터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지난 8일 바티칸 시스틴 성당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알렸다.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69)은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며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자,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미국 출신의 교황, 시카고에서 태어나 페루 빈민가에서 수십 년간 선교를 펼친 인물,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으로 불리던 그의 탄생은 단순히 교황 선출을 넘어서, 정치와 종교, 국제사회의 관계까지 재정립하려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영국 BBC는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면서도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며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레오 14세는 미국 시카고 출신이지만, 그의 가족은 루이지애나의 크리올 가문 출신으로, 19세기 기록에 따르면 그의 외증조부모는 모두 ‘자유로운 유색인’으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인물로서의 그의 위상을 더욱 강화시킨다.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사태, 수단 내전 등 다양한 분쟁에 대해 교황청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레오 14세의 등장은 교황청의 정치적 메시지가 강화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출신 교황 선출에 대해선 “도널드 트럼프 시대 대미 소통 강화 차원” “트럼프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백인 기독교인 집단인 복음주의자들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신학적으로는 중도 성향이지만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이민자 보호나 기후 위기 같은 진보적 의제에 관심이 많다.
그는 또한 최근 SNS를 통해 미국 내 반이민 정책에 대해 공개 비판을 내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장을 패러디한 이미지가 논란이 된 직후, 교황은 이민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사랑은 순위가 없다”며 부통령 JD 밴스의 성경 인용을 반박한 바 있다.
한편, 레오 14세는 오는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13년 만의 교황 방한으로, 한국 천주교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레오 14세는 선출 직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축복 메시지를 보내며 한국 교회에 깊은 연대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청년대회와 교황의 방한은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순간으로, 한국이 국제적인 무대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 시절부터 추진됐던 북한 방문 논의도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임민균 신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한 건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중시하는 의미 있는 선택”이라며 “북한처럼 인권이 유린된 지역에 교황의 메시지가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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