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중처법 위반 혐의’ 원청 건설사 대표 1심 무죄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5-05-20 16:10:14   폰트크기 변경      
법 시행 이후 5번째… "원청과 인과관계 없다" 판단

“하청 과실로 사고 발생… 원청 예견가능성 없어”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하수관로 공사 현장에서 지반이 무너져 하청업체 근로자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 건설업체 대표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이 하청의 사고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원청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일부 위반했지만 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진: 대한경제 DB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단독3부 지창구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건설사와 이 회사 대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2022년 10월 전북 군산시 금광동의 하수관로 공사 현장에서는 지반 붕괴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흙더미에 매몰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숨진 근로자는 하수관로를 묻기 위해 땅을 파놓은 곳에 두고 온 공구를 챙기러 내려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사시방서에는 흙막이 지보공(땅이나 굴을 팔 때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임시 설치하는 구조물)을 시공할 경우 ‘지보공을 뽑기 전 되메움을 해야 한다’고 기재돼 있었지만, 사고 당시 현장에서는 공사 편의를 위해 지보공을 제거한 뒤 되메움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B씨가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해당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평가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등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B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지 부장판사는 “이 사건 사고는 공사시방서와 안전관리계획서에 기재돼 있는 작업방식을 따르지 않고 굴착 장소에 되메우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흙막이 지보공을 철거하고 굴착 장소에 근로자의 출입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하청 작업반장 등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A사 현장소장이 잘못된 방식의 작업을 지시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방치한 사실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는 게 지 부장판사의 판단이다.

이를 근거로 지 부장판사는 B씨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5호에 규정된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한 업무 평가 기준 마련과 반기 1회 이상 평가ㆍ관리’ 의무를 위반한 사실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해당 의무 위반과 사고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B씨에게 사고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가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위험성 평가 절차를 마련하고, 그 절차에 따라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도록 해 결과를 보고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하청업체에는 벌금형이, 하청 현장소장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각각 선고됐다.


지난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 중에서 법원의 무죄 선고는 이번이 5번째다.

2건은 회사에 안전보건업무 전담조직을 두지 않거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점과 근로자의 사망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봤다.


나머지 2건은 지난해 1월 법 적용 대상이 상시 근로자 5명 이상∼50명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현장까지 확대되기 전에 사고가 발생했고, 법원이 공사금액을 50억원 미만으로 판단하면서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A사와 B씨 등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율촌의 송민경 변호사는 “하청의 사고 책임은 인정한 반면 원청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기존에는 하청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이 모두 무죄로 판단돼야 원청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한 것도 처음인 만큼, 굉장히 중요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프로필 이미지
정치사회부
이승윤 기자
leesy@dnews.co.kr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