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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관세 다음 카드, 스테이블코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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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6-02 04:00:13   폰트크기 변경      

17세기 서양에서 등장한 근대적 지폐는 ‘금 영수증’에서 시작했다. 당시 영국 상인들은 금 세공업자에게 금을 맡기고 보관 증서를 받는 현상이 생겨났다. 당시 금 보관 증서를 '골드스미스 노트(Goldsmith's note)'라고 불렀다. 상인들은 무거운 금을 들고 다니기보다 골드스미스 노트만으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골드스미스 노트는 지폐로, 금 세공업자는 은행으로 발전했다.

21세기 현대판 골드스미스 노트가 등장했다. 바로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화 등 기존 화폐에 고정 가치로 발행되는 암호화폐를 말한다. 여러 유형의 스테이블코인이 있지만, '1코인=1달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즉, 골드스미스 노트를 제시하면 금을 받을 수 있듯, 스테이블코인을 제시하면 현금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암호화폐가 수급 등의 요인에 의해 가격이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감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대의 화폐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스테이블코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블록체인 기술 등에 의해 관리·감독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지니어스 법(GENIUS Act)‘이 2025년 6월 미국 의회를 최종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첫 연방 법안이고,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프레임워크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 월가 은행들은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그룹, 웰스파코 등 미국의 주요 은행들이 공동으로 지분을 보유한 컨소시엄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첫째, 디지털 달러를 활용해 세계 주요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글로벌 통화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위안화에 대응해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 그 이상을 의미한다. 자국 통화를 이용하던 세계 주요국들이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에 의존하게 될 경우, 통화 주권을 놓치게 될 수 있다. 특히,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과 결합해 이용자들의 거래 상세를 관리·감독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안을 위협할 수도 있다.

둘째,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채 시장의 새로운 수요처가 될 것이다. 미국은 만성 재정적자국이고, 정부의 이자 지출 부담이 과중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은 세입을 축소케 할 것으로 재정건전성이 취약해 질 전망이다. 2025년 5월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주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미국 국채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입찰 시장에서 매수세가 약해진 것이다. 미국 정부의 추가 국채 발행이 부담스럽고,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에 국채금리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 새로운 수요처가 필요한데, 스테이블코인이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새로운 통화 패권 전쟁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ies)를 발행해 위안화의 글로벌 통화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통화 패권을 공고히 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 기업들에게 수입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라 압박을 가하고도 있다. 둘째,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는 새로운 유동성 공급장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구매자로부터 받은 현금을 활용해 국채를 매입할 것이다. 유동성 공급이 자산버블이나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부작용들을 모니터링하고,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통화 개발 및 정책적 활용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직접 설계한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 모델을 검토 중이다. 합리적 입법 절차도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규제를 통해 기술을 배제만 할 것이 아니라, 제도화를 통해 관리 가능한 범위로 끌어와야 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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