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ㆍ전자주총 도입 외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ㆍ집중투표제 등 추가
상법 개정 반대했던 재계, 불편한 기류 감지
금융투자업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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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권해석 기자]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이 다시 뜨거운 감자도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 상법 개정 재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이르면 이달 내에 상법 개정 작업이 끝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증권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지만, 상법 개정을 반대해 온 경제단체에서는 불편한 기색도 감지된다.
◆더 강화된 상법 개정안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 5일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국회 재표결 끝에 폐기된 상법 개정안을 보완한 법안이다. 당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전자 주주총회 도입이 담겼는데, 감사위원 분리선출 단계적 확대,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선출시 지배주주 의결권 3% 제한(3%룰) 등이 추가됐다. 아울러 앞선 개정안에는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자투표제를 제외하고는 공포 즉시 시행하도록 돼 있다.
이사 충실 의무 확대는 회사 이사회가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자는 데 목적이 있고, 전자주총은 주주의 주총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된 감사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3%룰과 합쳐질 경우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상장사의 감사위원회에 소액주주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의결권을 선임 인원만큼 부여하는 제도다.
3%룰을 제외하면 모두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내용들로, 소액주주 권익 보호 방안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은 최대한 빨리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당선되면)2∼3주 내에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한 만큼 빠르면 이달 내 처리도 가능하다. 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필요한 국회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고, 민주당 출신인 이 대통령 취임으로 거부권이라는 허들도 사라졌다.
◆기업 거번너스 변화 불가피
상법 개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 거버넌스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되는 만큼 이사회의 의결 결정 과정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할 공산이 크다. 법적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이사회 결정이 일반주주 이익을 침해하지는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인적분할이나 계열사간 자본 거래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외부 기관에 자문 등을 통해 의사결정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일반주주와의 소통 강화를 통해 의사 결정의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기업들이 투자나 사업 재편에 소극적으로 나서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투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서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주가 하락에 따른 일반주주의 소송 가능성을 우려해 기업이 아예 투자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투업계는 찬성
이런 이유로 재계에서는 그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지난 3월 8개 경제단체는 공동으로 상법 개정에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반대 성명을 냈던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일단은 지켜보는 중”이라면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들”이라고 전했다.
반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상법이 개정되면 이사회가 일반주주의 이해도 고려하게 되면 쪼개기ㆍ중복상장과 같이 지배주주만 이익을 보면 의사결정을 줄어들 것으로 본다. 회사가 일반주주의 이해보다는 지배주주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려 생기는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법이 개정되면 국내에 투자하겠다는 외국계 기관투자자가 있다”면서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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