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누락은 하청업체 시공상 과실
원청 ‘부정한 시공’으로 볼 수 없어
법조계 “부실벌점 사건에도 영향”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건설업계를 뒤흔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 LH가 시공사에 부과한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은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와 주목된다.
원청인 시공사가 철근 누락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철근 누락으로 인해 아파트의 구조적 안전성이 저하됐다는 점이 확인되지 않아 시공사가 ‘부정한 시공’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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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한경제 DB |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건설업체인 AㆍB사가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LH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앞서 지난 2023년 4월 LH가 발주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무량판 구조인 지하주차장 기둥에 전단보강근 배근이 누락돼 주차장 천장과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단보강근’이란 철근콘크리트(RC) 부재의 전단 파괴와 휨 방지를 위해 ‘ㄷ’자 모양으로 보강하는 철근을 말한다.
이후 LH는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전국 아파트 공사 현장을 상대로 철근 누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15개 현장에서 무량판 구조 기둥의 철근 누락 사실이 발견됐다.
AㆍB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사를 맡았던 현장에서도 하청업체의 과실로 전체 142개 기둥 가운데 7개 기둥에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LH는 ‘설계서상의 기준규격보다 낮은 다른 자재를 쓰는 등 부정한 시공을 한 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계약법령 등에 따라 AㆍB사에 3개월간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내렸다. 현행 국가계약법 등은 부정한 행위 등을 한 업체에 대해서는 부정당업자로 지정해 최대 2년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자 AㆍB사는 “철근 누락은 하청업체의 시공상 과실로 발생한 것일 뿐”이라며 ‘부정한 시공’을 했다고 볼 수 없어 LH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소송을 냈다.
반면 LH는 “철근 누락으로 아파트의 구조적 안정성이 저하돼 그 자체로 부정한 시공에 해당한다”며 맞섰다.
법원은 “LH의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며 AㆍB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국가계약법령상 ‘부정한 행위를 한 자’란 설계서상의 기준규격보다 낮은 다른 자재를 쓰거나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옳지 못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계약상 의무를 위반한 자를 말한다”며 “지하주차장 기둥의 철근콘크리트 공사는 하청업체가 시공한 것이므로, AㆍB사가 철근 누락에 직접 관여했다거나 철근 누락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철근 누락이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AㆍB사가 균열 발생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찰ㆍ관리한 만큼 하청업체의 시공상 하자를 방지하기 위한 주의ㆍ감독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볼 수도 없는 데다, 철근 누락에도 불구하고 콘크리트 압축강도가 설계기준강도를 웃도는 등 아파트의 구조적 안전성이 저하됐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같은 점을 근거로 재판부는 “계약이행 결과에 일부 하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AㆍB사가 계약을 이행할 때에 사회통념상 옳지 못한 행위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AㆍB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의 조희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부정한 시공’, 즉 부실시공과 단순 오시공은 구별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판결”이라며 “다른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이나 부실벌점 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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