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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머리는 ‘희끗’ㆍ샷은 ‘굿샷’… 강남 어르신들의 잔디 위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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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6-18 14:25:39   폰트크기 변경      
탄천변 27홀 하루 1만보 걸어

서울 첫 경로당 스크린 골프장도

“표심까지 흔드는” 생활체육


지난 17일 기자들과 탄천 파크골프장을 걷고 있는 조성명 강남구청장. / 사진 : 강남구 제공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지난 17일 오후 강남구 세곡동. 도심을 벗어나 탄천변에 이르자, 강남의 번잡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초여름 햇살을 받은 초록 잔디 위로 공을 치는 타격음이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클럽을 잡은 어르신들이 미소를 머금고 티샷을 날리고, 공은 잔디를 미끄러지듯 굴러가 홀 컵에 바짝 다가섰다. 머리가 희끗한 이들이 모여 웃고, 걷고, 경쟁하며 건강을 나누는 곳. 강남구 세곡동 탄천 파크골프장이다.

지난해 6월 준공된 이곳은 서울시 내 최대 규모(2만4552㎡)로, AㆍBㆍC 세 코스에 27홀이 갖춰져 있다. 도심 속에서 이런 공간이 가능했을까 싶지만, 성남시와 공군의 협조로 서울공항 인근의 비행안전구역까지 활용하며 유휴지를 최대한 끌어낸 결과다.

파크골프는 말 그대로 공원에서 하는 골프다. 정규 골프보다 코스는 짧고 장비도 단순하다. 클럽 하나, 공 하나면 된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골프를 배워본 적 없는 이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대신, 한 바퀴를 도는 데 8000보에서 많게는 1만보를 걷는다. 운동량은 정규 골프보다 오히려 많은 편이다.

클럽을 처음 잡아보는 기자는 이날 9홀 라운딩에 나섰다. 규칙도 타격법도 생소했지만, 몇 번 휘두르니 금세 손에 익었다. 거리 30~70미터를 넘나드는 파3부터 파5까지, 골프의 긴장감과 산책의 여유가 동시에 찾아왔다. 여느 골프장처럼 복잡하지도, 시간 부담도 없다. 무엇보다 45분이면 한 코스를 도는 쾌적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탄천 파크골프장 라운딩 모습. / 사진 : 강남구 제공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강남구에 파크골프장이 없어 여의도나 상암까지 멀리 갔는데, 이젠 하루 4000~6000원이면 이웃들과 여가도 즐기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 1석 2조”라며 클럽 끝을 가리켰다.

이용자 수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6월 개장 후 현재까지 누적 방문객은 3만1820명. 동시에 최대 108명이 이용할 수 있고, 하루 4부제 운영 시 432명까지 소화된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이 민선 8기 들어 신설한 ‘생활체육과’의 첫 성과로 꼽히는 이 공간은 단순한 운동장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가 호흡하는 공공 여가지로 자리매김 중이다.

골프장 곳곳에서는 혼자 온 어르신들이 서로 먼저 말을 걸고, 코스를 돌며 자연스럽게 인사와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한 부부 커플은 앞 조에서 만난 동네 친구들과 함께 다음 라운드를 약속했다. 

“혼자 있으면 하루가 안 가요. 여기 오면 말도 하고, 웃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한 70대 여성 참가자는 말했다. “자주 보니까 이름은 몰라도 얼굴 보면 아는 사람이 생기죠. 이 나이에 친구가 생겨요.”

특히 부부 동반 참가자들이 늘면서 노년기 부부 관계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날 만난 권오승 강남파크골프협회 부회장은 “예전엔 남편은 골프, 아내는 문화센터였는데, 이젠 같이 클럽 나와 취미생활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이 기세를 몰아 ‘실내형 파크골프’도 도입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매봉시니어센터 파크골프아카데미’다. 도곡동의 오래된 경로당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고, 서울시 최초로 경로당에 스크린 파크골프를 설치했다. 지금까지 프로그램 참여자만 679명, 자율 이용자는 2525명에 이른다. 구는 올해 안에 7개 문화센터ㆍ경로당에 같은 시설을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탄천 파크골프장 전경. / 사진 : 박호수 기자 


지난달엔 ‘3대 가족 파크골프대회’가 열려 49개 팀, 140여 명이 참여했다. 구는 연 2회의 시니어 대회, 구청장배와 협회장기 등 정례대회도 이어갈 계획이다.

이제 파크골프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을 넘어 지역 어르신들의 민심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르신들 사이에선 “골프장 덕분에 요즘 나갈 이유가 생겼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일부 동네에서는 “우리 동네엔 왜 안 생기냐”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이날 한 강남구 주민은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만들어주면 다음 선거에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냐”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젠 파크골프장 하나가 시니어 표심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며 “체육 인프라의 격차가 정치적 영향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생활체육과를 신설해 파크골프장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 결과 구민들이 건강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구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파크골프를 비롯해 다양한 생활체육 환경 조성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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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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