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째 제자리” 예타기준 상향 시급
도심 재정비 절차 간소화로 공급 숨통
외국인력 운용계약제도 개선 등 촉구
[대한경제=김희용 기자]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가 건설업 위기 극복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 20건을 정부에 건의하고 나섰다. 건설업은 생산 및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대표적인 경기 견인 산업인 만큼, 해묵은 규제를 과감히 정비해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경협은 지난 8일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에 △주택공급 활성화 및 건설투자 촉진 △건설 현장 안전 및 환경 규제 합리화 △건설 계약 및 입찰 제도 합리화 △건설 생산성 향상 및 지원 강화 등 4개 분야에 걸친 ‘건설업 규제개선과제’를 제출했다고 9일 밝혔다.
한경협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 상향’을 꼽았다. 국가재정법에서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 예타를 의무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26년째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명목 GDP는 약 4.2배 증가했지만, 예타 기준은 경제 규모 확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중요한 대형ㆍ중장기 인프라 사업의 추진이 지연되고, 적기 투자가 어려워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예타 조사 소요 기간은 평균 17.6개월로, 운용 지침상 기한(9개월)의 두 배 가까이 소요되며 사업 착공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에 한경협은 “예타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 국가 재정지원 규모 500억원으로 상향하고, 간소화된 ‘신속 예타(Fast-Track)’ 제도를 활성화해 심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과도한 규제는 도심 재정비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어 주택 공급 절벽이 현실화되는 중이다.
재정비사업은 현재 정비구역 지정부터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착공 및 준공에 이르기까지 평균 10~15년 정도가 소요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용적률 제한, 녹지 확보 기준 등 각종 규제가 사업성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한경협은 “‘재건축ㆍ재개발 촉진 특별법’을 제정해 사업시행계획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 동시 처리 등 절차 간소화와 용적률 및 건축물 높이 등 규제 완화를 통해 사업성을 확보하고 재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운영되는 비숙련 외국인력(E-9)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꼽혔다.
현행 제도상 동일 사업주 내 공사 현장 간 이동조차도 제한적인 사유에서만 허용되며, 고용지원센터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이 과정에서 신규 고용 허가 신청에 준하는 서류 제출이 필요해 현장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또한, 독자적 판단 및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노무’에 한해서만 비숙련 외국인력에 대한 이동을 허용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동일 사업주 내에서의 현장 간 이동을 간소화하고, 업무 범위를 현장 수요에 맞게 확대함으로써 건설 현장의 인력 운용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계약 제도도 손질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정부 발주 장기계속공사의 경우 총공사금액을 입찰하지만, 계약은 연간 단위로 매년 확보되는 예산 범위 안에서 순차적으로 계약을 진행한다. 이에 연차별 차수 계약 종료 후 다음 계약 체결 시점까지 휴지기간이 발생한다.
그러나 휴지기에 발생하는 인건비, 장비 유지비 등 현장 유지ㆍ관리를 위한 간접비를 보전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시공사가 손실을 떠안는 사례가 반복되는 중이다.
한경협 측은 “장기계속공사의 특수성을 반영해 총 계약기간 변경도 계약 금액 조정의 대상이 됨을 명시해 추가 인건비ㆍ장비비 등 간접비를 합리적으로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희용 기자 h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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