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동섭 기자] 새 정부 들어 디지털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디지털자산에 직접 투자하기 부담스러웠던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ETF는 추종하는 지수의 구성종목들에 투자하는 일종의 펀드다. 거래소에 상장시켜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자산 현물ETF도 기초 자산이 디지털자산일 뿐 기존의 ETF와 거래 방식은 동일하다. 지금은 디지털자산에 투자하려면 개별 가상자산 거래소에 가입해 가상자산 보관 지갑 등을 개설해야 하지만, ETF에 투자하면 기존 증권계좌로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자산 ETF가 제도화되어 있다. 홍콩은 2022년 12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선물ETF를 마련한데 이어 2023년 세계 최초로 이더리움 현물ETF를 승인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작년 1월 비트코인을 비롯해 알트코인 현물ETF 11개 상장을 승인한 바 있다. 일본도 내년부터 디지털자산 현물ETF 거래가 가능하도록 관련 제도를 개편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내외 디지털자산 현물ETF 거래가 모두 불가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해 1월 “자본시장법 4조 상 증권상품의 토대가 될 기초자산에 디지털자산이 적시돼 있지 않아 위반 소지가 있다”며 디지털자산 현물ETF의 중개ㆍ거래를 일절 금지했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난 5월6일 SNS를 통해 “청년이 자산을 형성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가상자산 현물ETF 제도화와 통합감시시스템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27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디지털자산을 현물ETF 기초자산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신탁업자의 디지털자산 수탁 및 관리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디지털자산 현물ETF 도입의 첫 단추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그간 디지털자산 현물ETF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금융위원회도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가상자산 현물ETF 도입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하면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이다.
디지털자산 현물ETF 도입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현물ETF가 도입되면 투자자 유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종욱 웨이브릿지 대표는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ETF는 출시 11개월 만에 금ETF의 순자산총액(AUM)에 도달했다”면서 “국내에 디지털자산 현물ETF가 출시된다면 2030년까지 시장 규모가 최대 63조원 규모로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다만, 이제 논의가 시작 단계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디지털자산 현물ETF가 도입되면 운용사가 직접 디지털자산을 매입해 보관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보관 기관이나 방식이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법인투자자의 디지털자산 거래 허용 여부도 걸림돌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일부 법인에 대해 디지털자산 거래를 허용하지만, 금융기관은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이외에도 외국환 거래 제도 개선과 국내 지수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미래금융전략센터 변호사는 “현재 비트코인 현물 거래량이 3000억원 수준인데, ETF 출시 시 이를 상회하는 물량을 국내에서 매입하기 어렵다”면서 “자산운용사가 해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원화로 매입할 수 있도록 외국환거래 제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외 거래소 간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만큼 국내 거래소 시장가격 기반의 ETF 가격 산정용 지수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섭 기자 subt7254@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