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은 모든 색의 제왕이다. 동양에서 먹(墨)은 물질이 아니라 동양 정신의 태동이라 하듯 서양에서는 파란색이 희망과 행복을 상징한다. 청색계열에는 코발트 블루를 비롯해 네이비블루, 터키블루 등 무려 50여종이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파란색이 등장한다. 재무상태가 우수하고, 오랜 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대형 우량주를 ‘블루칩’이라고 부른다. 미술시장에서는 국제적으로 예술성과 미학적 검증이 끝난 작가들의 작품을 ‘블루칩’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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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의 '동풍' 사진=서울옥션 제공 |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블루칩 화가’들의 파란 색상의 작품 30점을 비롯해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궤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77점이 경매에 부쳐진다. '미술품 경매회사의 맏형' 서울옥션이 오는 22일 서울 강남센터에서 여는 여름 세일 행사를 통해서다. 출품작들의 낮은 추정가 총액만도 59억원에 달한다.
미술시장의 침체기가 수년 째 이어지며 미술품 거래 규모 역시 크게 줄어들고, 가격도 조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색다른 경매장터가 마련돼 주목된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미술시장은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반복돼온 만큼 지금의 트렌드를 잘 읽고 불확실성에 잘 대비하면 좋은 작품을 합리적 가격에 선점하고 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옥션은 이번 경매행사에서 청(靑)색을 주제로 한 블루섹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가장 하이라이트 작품은 역시 이우환의 1984년 작 동풍(East Winds)‘이다. 푸른색 선들이 작가 특유의 고요하고 사색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화폭에 수직과 수평으로 간결하게 그어진 붓질은 절제된 표현 속에서도 농담과 길이를 달리하며 자유로운 흐름을 드러낸다.
’제주의 화가‘ 강요배의 1952년 작 ’움부리-백록담‘도 나온다. ‘움부리’는 원래 제주의 방언으로 화산 분화구를 의미한다. 백록담 분화구에서 받은 인상을 화폭에 그대로 옮긴 걸작이다. 제주의 자연이 지닌 원시적 에너지와 정신적 울림을 강렬하게 녹여냈다. 화면에서 뿜어 나오는 흰 기운과 휘몰아치는 붓자국은 대지와 하늘이 맞닿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강 화백은 1980년대 ‘현실과 발언’ 활동을 통해 사회적 발언이 담긴 회화를 시도하며 화단에 등장했다. 제주 4·3 항쟁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고향 제주도의 풍경과 역사를 오랜 시간 화폭에 담아왔다.
스위스 출신 화가 우고 론디노네의 푸른색 작품도 눈길을 끈다. 생전에 연인이었던 존 지오르노와 함께 매티턱의 바닷가에서 마주한 풍경을 차지게 채색한 작품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치환해 명상적인 분위기를 살려냈다. 짙은 청색의 수평선 위로 어둡게 떠오른 동그란 이미지는 마치 일식의 순간처럼 다가온다. 추정가는 2억 5000만~4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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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의 '황혼' 사진=서울옥션 제공 |
국내외 근현대미술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도 줄줄이 입찰대에 오른다. 색면화가 유영국의 1979년작 ‘황혼’은 추정가 4억5000만~6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해가 저물며 하늘과 산야가 강렬한 색채로 물드는 풍경을 선과 면, 색의 조화로 재현한 작품이다.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는 산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색의 온도감이 풍부하고 조화롭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200호 크기의 대작 ‘회귀’는 추정가 2억2000만~3억 5000만원으로 물방울과 한자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작가의 대표적인 물방울 회화 연작 중 하나로, 환상적인 시각 효과와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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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록카쿠의 ‘무제’ 사진=서울옥션 제공 |
해외 작가로는 아야코 록카쿠의 ‘무제’가 고가에 출품됐다. 귀여운 인물이 화사한 배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핑거 페인팅 기법으로 완성됐다. 자유로운 붓질과 감성적인 색감이 조화를 이루며 스프링같은 생동감이 돋보인다. 요시토모 나라의 ‘사랑니(Wisdom Tooth)’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성장과 통증, 억눌린 감정을 묘사한게 흥미롭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현대인의 두려움, 고독, 반항심 등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번 경매의 백미는 연간 기준 2400만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장흥 아트 스토리지 8평형 1년 이용권’이다. 장흥아트 스토리는 서울옥션이 지난해 하반기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 새로 오픈한 미술품 전문 수장고다. 보안, 방재, 항온항습 등 최첨단 설비를 갖춰 미술품 보관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경매는 1000만원부터 시작된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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