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호윤 기자] 국내 소주 시장이 16도를 중심으로 한 저도주 경쟁에 돌입했다. 롯데칠성음료와 하이트진로가 잇달아 주력 브랜드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서 건강 지향과 분위기 음주 문화 확산이 업계 지형을 바꾸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대표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5도에서 16도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1년 16.9도에서 16.5도로 조정한 이후 4년 만의 추가 인하다. 처음처럼은 2006년 첫 출시 당시 20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총 4도가 낮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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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하이트진로도 2022년 ‘진로(진로이즈백)’를 16.5도에서 16도로 낮춘 데 이어, 지난해에는 ‘참이슬 후레쉬’도 16도에 맞췄다. 이에 따라 롯데칠성음료와 하이트진로 주력 제품인 ‘처음처럼’과 ‘참이슬 후레쉬’ 두 제품의 알코올 도수 모두 16도로 낮아지게 됐다.
이 같은 소주 도수의 변화는 1965년부터 시작됐다. 알코올 도수가 30도로 낮아진 것이다. 이후 1973년 진로 소주가 25도로 낮아졌으며 1980년대 소주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이 시기 ‘소주=25도’라는 인식이 대중에게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많은 중장년층은 여전히 이 시기의 소주를 ‘진짜 소주’로 기억한다.
25도 소주 공식이 깨진 건 하이트진로가 1998년 23도 ‘참이슬’을 출시하면서부터다. 그동안 진로는 알코올 도수를 긴 시간을 두고 5도씩 내렸는데, 참이슬은 0.2~2도씩 낮추는 전략을 취했다. 23도로 출발한 참이슬은 2021년에는 16.5도까지 낮아졌다.
하이트진로는 2019년 16.9도짜리 진로이즈백을 출시했고, 2021년에 16.5도로 도수를 낮췄다. 2023년에는 과당을 첨가하지 않은 ‘제로 슈거(Zero Sugar)’ 진로를 내놓으며 알코올 도수를 16도로 더 내렸다.
이런 변화는 국내 음주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반영한다. 과거 ‘부어라 마셔라’ 음주 문화의 틀을 벗어나 분위기 자체를 즐기려는 소비자가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또한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도 저도주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저도주 트렌드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부터 25도 안팎이던 소주 도수가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고, 개인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음주 문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을 보고 주류 판매량을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25도 소주를 17도로 낮추면 같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려면 소주를 약 47% 더 마셔야 한다. 주류업체들의 수익성 개선 효과도 높다. 알코올 도수를 0.1도 낮추면 소주 1병당 주정 원가를 0.6원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차별성이 없어졌다는 우려도 있다. 주요 소주 브랜드들이 모두 16도로 통일되면서 차별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가 겹치면서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도주가 이제 하나의 독립된 주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면서 “앞으로는 도수뿐만 아니라 맛과 원료, 기능성을 차별화한 제품 개발에 집중해 개인화된 소비자 니즈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윤 기자 khy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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