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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개최한 ‘미국 OBBB 법률 및 비자 대응 전략 설명회’에서 황경인 산업연구원 실장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이계풍 기자 |
[대한경제=이계풍 기자] 전기차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군용 드론, 휴머노이드 로봇,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비(非)전기차 분야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2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미국 OBBB 법률 및 비자 대응 전략 설명회’에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상황에서 배터리 산업이 방산 드론, 휴머노이드, ESS 등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배터리 수요의 80~90% 이상이 전기차에 집중되면서 전기차 판매 부진이 배터리 산업 전반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지난해 실적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도 전기차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따른 구조적 한계라는 분석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4.1% 감소했고, 삼성SDI는 22.6%, SK온은 무려 52.2% 줄어들었다.
황 실장은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군용 드론 시장을 가장 유력한 차세대 수요처로 지목했다. 그는 “글로벌 군용 드론 시장은 2030년까지 356억 달러(약 46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드론이 전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면서 각국이 무인무기 체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드론의 핵심 부품으로 고성능 배터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황 실장은 “군용 드론 상용화의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짧은 체공 시간과 소음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량화, 고밀도, 빠른 충·방전 성능을 갖춘 배터리가 필수이며, 이는 삼원계 배터리에 강점을 지닌 한국 기업에 유리한 시장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차 시장이 가격 경쟁 국면으로 전환된 것과 달리 드론 시장은 여전히 성능 중심”이라고 덧붙였다.
미중 갈등 또한 한국 기업엔 기회 요인이 되고 있다. 황 실장은 “올해 초 미국이 중국산 드론 규제 법안을 사전 예고한 바 있다”며 “중국이 미국의 적성국으로 분류됨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중국산 드론과 배터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도 차세대 수요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를 380억 달러(약 49조 원)로, 보스턴컨설팅그룹은 60조 달러로 전망했다. 황 실장은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피지컬 AI’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휴머노이드는 폭발적인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분야이며, 배터리가 전체 제조원가의 4~10%를 차지하는 만큼 한국 기업에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SS 시장도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된다. 최근 AI 데이터센터의 급증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ESS 수요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황 실장은 “ESS 시장은 2030년까지 40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A)’ 체제에서도 ESS 부문은 투자 세액공제가 유지돼 한국 기업들이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황 실장은 끝으로 “배터리 산업은 반도체나 철강처럼 경기순환적 특성을 지닌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며 “현재는 사이클 상 바닥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동화ㆍ무선화ㆍ탈탄소화라는 메가트렌드 속에서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며 우상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계풍 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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