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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선들의 매직...행복한 선율과 파동이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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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7-22 16:38:57   폰트크기 변경      
이스탄블 전시에서 세계인들에게 주목받은 조성훈 작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략)/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지용(1902~1950)이 22세의 젊은 나이에 쓴 ‘향수’라는 시다. 고향에 대한 추억을 마치 눈앞에서 전개되는 영상처럼 구성하고,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한 게 돋보인다.

한 외국인이 조성훈씨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조성훈 제공


한 편의 시적 여운을 알록달록한 추상미학으로 조형화하는 화가가 있다. 3차원의 조각 회화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성훈 씨다. 지난 5월 튀르기예 이스탄블 전시회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그는 화화를 기반으로 조각, 디지털 패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첫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붓이나 펜 등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액체 상태의 물감을 캔버스에 떨어뜨려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거나, 축적시키는 ‘적가(滴加)’기법을 사용해서다. 그래서 색채 파동이 요동치는 화면은 전통적 회화와 달리 마치 물질이 쏟아지듯 흐르는 색선들의 마술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단순히 색채의 배합이나 추상 구성에 머물지 않고, 공기 중에 떠도는 진동, 도시의 리듬, 빛의 입자와 같은 ‘보이지 않는 흐름’을 가시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씨는 작품 속 선에 대해서도 남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화면 위를 정교하게 감싸는 선들은 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복적인 물리적 몸짓과 손의 감각으로 이루낸 겁니다.” 화면 위를 흐르는 수천 개의 가는 선들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시각적 진동과 감각적 체험을 유도하는 파형처럼 보인다. 손으로 그은 것이 아니라, 방울이 떨어지고 중첩되어 생긴 감각의 흔적인 셈이다.

관람객은 단순히 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동을 느낄 뿐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시각적 향유에 머물지 않고, 촉각적 감응을 동반하는 ‘몸의 회화’처럼 느껴진다. 관람객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멈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이런 조형적 접근법은 옵아트(Op Art)나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회화적 물성을 강하게 고수한다는 점에서 그의 미학적 독창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녹색 계열의 작품은 마치 자연 속 에너지 흐름이나 신경망 구조가 연상되고, 붉은 계열의 작품은 감정의 분출이나 열에너지를 떠올리게 한다.

조씨는 “각기 다른 파장이 서로 충돌하고 겹쳐지며, 하나의 고요한 질서 속에서 유기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다.

“나는 선을 그리지 않습니다. 선을 흘려보냅니다. 이 흐름은 내 의지를 벗어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죠.” 통제와 우연, 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유영하며, 관람객과 함께 감각의 리듬을 만들어간다는 얘기다.

그는 선의 움직임을 통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꾀하면서 무의식의 꿈틀거림을 화면에 펼쳐보인다. 마치 재즈 선율처럼 풀어내 다소 감각적이고 즉흥적이다. 어떤 작품은 나비들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작품마다 선 하나하나가 다를 뿐만 아니라 구도 또한 다양하다.

조씨는 “도상의 틀에 매이지 않고 나 자신의 원초적인 내면세계에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웠다”며 “용틀임하는 선, 자유로운 선, 서릿발 같은 선 등 다양한 형태의 선을 통해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굳이 입체적인 선을 작품 소재로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은 작가의 깊은 내면세계, 원시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적 시간과 인간의 잠재의식을 묘사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고요. 색선 자체의 묵직함을 화면에 그대로 표현해 보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합니다. 선을 통해 현대인에게 무엇이 진정한 가치이고 행복인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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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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