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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한형용 기자] 3주가 훌쩍 지났다. 지난주는 전국이 폭우로 몸살을 앓았기에 갈등을 해소할 시간도 벌었다. 하지만 비가 그친 이후에도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공사현장에 레미콘 공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골조공정 등 후속 작업에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추진하는 ‘서울원 아이파크’ 건설현장 이야기다.
한국노총 소속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지난 2일부터 서울원 아이파크 건설현장에 레미콘 운송을 거부하고 있다. 쟁점은 건설현장 내 레미콘을 제조ㆍ공급하는 설비인 배처플랜트의 설치 여부다. 운송기사들에게는 일감 확보라는 생존 문제이고, 건설업계에는 효율적 시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건설현장에 배처플랜트가 설치되면 레미콘 운송 수요가 줄어든다는 우려는 타당하다. 의정부 등 레미콘 제조사에서 차량으로 20∼30분 거리에 있는 서울원 아이파크 현장마저 배처플랜트를 설치한다면, 향후 서울 도심 내 각종 개발사업 현장에 배처플랜트가 대거 도입될 것이라는 우려도 공감된다. 다만 현장별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집단 운송 거부라는 카드를 제시하며 갈등을 촉발시킨 것은 정당성이 부족하다.
서울원 아이파크는 일반적인 건설현장과 다르다. 광운대역 철도 위 교량ㆍ도로 설치라는 특수 공정으로 작업시간은 새벽 2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단 2시간에 불과하다. 이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레미콘 제조사도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고려해 공장 가동을 멈춘다.
게다가 건설현장 주변에는 선곡초, 공릉초, 광운중ㆍ고 등 교육시설이 밀집해있다. 등하교 시간대 통학로와 차량 동들선이 겹치는 구조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배처플랜트 설치를 검토 중이다. 다만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레미콘 외부 공급이 어려운 야간 및 새벽(아침) 시간에 맞춰 배처플랜트를 가동하고, 생산ㆍ공급량은 정부의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에 명시된 ‘수요량의 50%’보다 낮추겠다고 했다.
올 초에는 서울원 아이파크 건설현장에 레미콘 공급이 가능한 인근 레미콘 13개 제조사로부터 배처플랜트 설치와 관련한 동의서도 받았다. 중소레미콘사들은 새벽시간 제조가 불가능한 상황을 공감했지만,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배처플랜트 설치를 둘러싼 레미콘 운송기사들과의 갈등은 유독 HDC현대산업개발이 추진하는 서울원 아이파크 건설현장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2022년 삼표산업 성수공장이 철거되면서 서울 레미콘 공급망은 치명타를 입었다. 서울지역 공급물량 3분의 1을 차지하던 전략적 거점이 사라진 영향이다. 올 연말에는 삼표 풍납공장도 가동을 중단한다. 서울시는 레미콘 공장의 대체부지 이전마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도심은 레미콘 공급 불모지가 됐고, 앞으로 서울 도심권 내 배처플랜트 설치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될 수밖에 없다.
레미콘 운전기사들의 일방적인 레미콘 공급 중단 피해는 건설사뿐 아니라 분양받은 일반 국민에게 옮겨지게 된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모두가 생존하는 방안이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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