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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 디자인의 배신] ②급증한 공사비ㆍ工期 압박에 ‘가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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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7-29 06:01:14   폰트크기 변경      
누더기 된 청사진...“조감도와 완전 딴판”

344억 투입 창원 ‘빅트리’ 전망대

모습 드러내자 “흉물스럽다” 반응

디아드 청담, 세 차례나 설계 변경

공사비 산줄 과정서 디자인 ‘변질’


설계자 제한적 참여, 일관성 해쳐

계획-원안설계 이원화 수행 방식

까다로운 행정절차 등도 ‘장애물’


서울 명물 ‘DDP’는 원안 살리려

공사비 3500억이나 증액 ‘대조’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막말로 뚜드려 뿌사삐는(두드려 부숴버리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장금용 창원시장 권한대행은 이달 초 열린 간부회의에서 초대형 인공나무 조형물 ‘빅트리’를 둘러싼 경관 훼손 논란과 관련해 “지역 커뮤니티에 민원이 엄청나게 많다”며 이 같이 질타했다.

28일 경남 창원시에 따르면 시는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으로 ‘성산구 대상공원’일대 개발을 진행 중이다.


시행사 대상공원개발사업단(SPC)이 공원 전체 면적 95만7000여㎡ 중 87.3%를 빅트리, 빅브릿지, 맘스프리존 등 공원시설로 조성한 후 시에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12.7%에 1779가구 규모의 아파트와 상업시설 건립 등으로 수익을 거두는 게 골자다.

도마에 오른 초대형 인공나무 ‘빅트리’는 공원 정상부 대지 7316㎡에 총 344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조성 중인 높이 40m의 전망대다.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의 슈퍼트리를 참고했으며, 창원시의 새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 공정률이 90%를 넘으며 외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민들은 조감도와 현저히 다른 모습에 “탈모 트리 같다” “흉물스럽다”는 부정적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사업단은 지난 2022년 건축허가를 받아 착공했지만, 강풍으로 인한 안전 문제와 유지관리 어려움 등을 이유로 주요 구조였던 상부 메인 인공나무를 설계에서 제외했다.

실물-조감도 간 괴리가 문제가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 강남구의 고급 회원제 시설 ‘디아드 청담’ 역시 지난 5월 준공 이후 애초 조감도와 다른 외관으로 논란이 됐다. 세 차례에 걸친 설계 변경을 거치며 △캔틸레버 구조 △불규칙적인 돌출 기둥 △대형 유리창 등 고난도 디자인 요소는 직선 위주의 단순한 형태로 대폭 축소됐다.


이와 관련해 디아드 측은 “논란이 된 외관은 지난 5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완료 이후, 책임 준공 기한 내 준공을 확정짓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일시적으로 단순화된 형태로 먼저 공개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종 외관이 아니며, 이달 말 전문 외장 시공사 선정을 마치고 현재는 외관 특화 설계를 반영한 마감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실제 기획 단계에서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조감도나 투시도를 제작하더라도, 건축사의 지속적인 설득과 건축주의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사비 산출 과정에서 디자인 요소가 대거 축소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홍성용 서울건축포럼 의장은 “창의적인 건축물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를 감당하겠다는 명확한 합의가 없다면 조감도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6년 설계 당시 공사비가 1593억원으로 계획됐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원안을 살리기 위해 공사비가 5094억원까지 늘어났다”며 “설계 의도가 끝까지 구현됐기에 자하 하디드의 결과물이 세계적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까다로운 심의와 복잡한 건축 인허가 체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대형 개발사업의 경우 경관심의, 도시계획심의, 교통영향평가 등 수십 가지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초기 구상이 흔들리는 일이 잦다는 지적이다.

중소 B사 관계자는 “경관심의의 경우 건축사가 구상한 최초 콘셉트에 가장 크게 발목을 잡는 과정”이라며 “심의의 목적이 도시의 심미성과 기능성 향상에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완공된 건물들이 이를 충족했는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설계자의 지속적인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구조 역시 일관성을 해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건축사는 실시설계 단계에서 마감 재료와 기본도면, 상세도, 창호도, 천정도 등을 포함한 ‘최종 도서’를 건축주에게 납품하면 계약상 역할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후 공사는 시공사와 감리자 주도로 진행되는데, 현장 여건, 자재 수급 상황, 예산 절감, 공기 단축 등을 이유로 원안은 수시로 변경된다.

대형 C사 임원은 “특히 해외 유명 건축가가 계획설계를 맡고, 국내 로컬 건축사가 실시설계를 수행하는 경우 원안은 산으로 가고 만다”며 “로컬 건축사가 콘셉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우선순위를 설정하지 않은 채 핵심 디자인 요소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축설계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건설산업 전반의 프로세스가 건축사의 판단과 역할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라고 진단한다.


중견 D사 임원은 “제도를 뜯어고치고 규제를 일부 완화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발주처, 시공사, 감리자, 지자체 등 건설 참여 주체 모두가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존중하고, 결과물이 단순한 건물이 아닌 작품이 되도록 협력하는 문화가 먼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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