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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칼럼] 종심제 담합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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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7-28 12:00:22   폰트크기 변경      


올해 5월부터 40여개 주요 건설사들을 뒤집어 놓았던 공정거래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주택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 입찰 담합 조사의 시작점은 작년 9월 입찰한 ‘고양창릉 S-6BL 아파트 건설공사 3공구’다.

계약을 집행했던 조달청은 입찰에 참여한 업체 중 D사와 T사의 내역서가 완전히 일치한 점을 인지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조달청은 2개 건설사가 사용한 견적 프로그램이 I시스템인 것을 확인하고, 정황 조사를 부탁하며 LH 입찰 브로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상황을 추적하면 다음과 같다. D사와 T사는 LH의 아파트 건설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준의 견적 능력이 없는 건설사로, 견적 대행업체로부터 내역서를 받았다. 이 내역서는 L사 소속의 A부장이 돌린 것이었다. 당시 A부장은 LH 입찰에서 D사와 T사 외에도 최소 3개사를 더 손에 쥐고 내역을 작성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 지 9일이 지나 LH의 ‘경북대 캠퍼스 혁신파크 HUB동 건설공사’에서 또 동일내역 사태가 발생한다. 취재 결과 4개사가 2개씩 묶여 똑같은 내역서를 제출했는데 이 중에 중견 건설사 S사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4개사가 제출한 투찰금액은 무효처리됐고, 결국 가격심사 1순위가 뒤집혔다.

취재 과정에서 경북대 캠퍼스 사업에서도 입찰 브로커 A부장이 내역서를 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브로커가 드러난다. 충북의 유명 건설사 J사 소속의 견적담당자도 A부장 만만치 않은 브로커로 유명하다. 해당 담당자 역시 특정 프로그램을 무료로 활용하며 업체들에 내역서를 뿌리고 다녔다.

문제는 이때 조달청이 사실을 파악하고도 이 두 브로커를 처벌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견적 대행과 입찰 브로커의 명확한 구분점을 설정하지 못한 탓이다.

수개월간의 취재 내용을 종합한 기자의 시각으로 볼때 입찰 브로커는 견적 대행 서비스가 아니다. 이들은 종심제의 균형가격 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한다. 견적 시뮬레이터를 통해 수백개의 견적서를 만든 후 업체들에 뿌리는데, 특정 가격대를 설정해 하나의‘가격군(群)’을 형성하고, 이 중 한 군데가 수주하면 0.5∼1% 사이의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공정위 조사가 실패한 이유는‘가격군(群)’을 만드는 행위와 투찰 전 상대방 업체의 가격 정보를 공유하는 건설사들의 정상적 영업 활동을 구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공정위가 현장 조사를 개시한 첫 날 A부장의 행태를 리니언시 한 제보자가 나왔다. 당시 이미 A부장은 도망 중이었고,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취재 과정에서 A부장에 대해 한편으로는 연민이 생겼다. 본인의 특장기를 살려 부업을 했음에도, 약속받았던 성공 수수료는 거의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 입장에서 수억 단위를 현금으로 지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기명 채권으로 받아도 요즘 같은 때 현금화는 쉽지 않다.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종심제일까. 유사 담합을 조장하는 이는 입찰 브로커인가, 아니면 기획재정부인가. 이제는 결론을 내야 한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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