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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피플] K뷰티 무대 뒤 기획자,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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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8-04 05:00:30   폰트크기 변경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①

IMF 위기 속에서도 가격 올리지 않고

고객사 일정 맞춰 공장 돌려 '정면돌파'

日 기술 버리고 독립연구소로 자체 개발


연매출 2조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화장품 하청회사 아닌 브랜드사 파트너

OEM 넘어 세계 ODM 1위 기업으로 우뚝



[대한경제=오진주 기자] "꿈은 오직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이 짧은 문장에는 K뷰티라는 화려한 무대 뒤에서 브랜드보다 브랜드를 더 고민하는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의 철학이 녹아 있다. 코스맥스의 창업자인 이 회장은 전면에 서기보단 글로벌 브랜드의 성장을 돕는 무대 위 조력자로 남기를 택했다.

코스맥스는 창업 30년 만에 연매출 2조를 넘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0년도 되기 전에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고, 7년 전에는 1조원을 넘겼다. 현재 전 세계 27개 공장(화장품 부문 19개)에서 연간 33억개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외 파트너사는 4500여곳에 달한다.

'무대 뒤에 남아야 한다'는 이 회장의 고민은 코스맥스를 글로벌 1위 화장품 제조사 개발 생산(ODM)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바탕이 됐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사진=코스맥스


◆ IMF 닥쳤지만..."가격도 안 올리고, 최소 수량도 맞춰준다"


이 회장은 1992년 46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창업했다. 서울대학교 약학대를 졸업한 그는 동아제약과 대웅제약을 거쳐 오리콤의 광고기획자(AE)로도 일했다. 대웅제약에서는 임원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박차고 나와 뒤늦게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제약 영업부터 마케팅까지 젊은 시절 두루두루 쌓은 그의 경험은 코스맥스의 풍부한 토양이 됐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금융위기(IMF)가 터진 1997년은 코스맥스가 공장을 막 새로 지은 때였다. 경제 위기가 닥치며 가장 큰 고객사 두 곳이 화장품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고, 코스맥스의 생산량은 절반가량 급감했다.

이 회장은 공장을 닫을 수도 있었던 위기 상황에서 정면 돌파를 택했다. 우선 그는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또 최소 생산 수량을 없애고, 고객이 한 달 치 물량만 원해도 맞춰줬다. 고객사가 원하는 때에 납품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특근 수당을 주며 주말에도 일을 했다.

그의 전략은 '코스맥스는 거래처를 위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위기는 오히려 IMF를 1년 만에 극복하고 이후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IMF는 코스맥스가 '파트너형 제조사'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됐다.

당시 경기 화성시 코스맥스 본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경수 회장(왼쪽)과 항남제약공단 내 공장 모습./사진=코스맥스


◆ 일본 기술 버리고 독립 선언


코스맥스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던 건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제조사 개발 주문 생산(ODM) 회사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ODM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코스맥스의 전신은 '한국미로토'다. 1992년 당시 화장품 기술 선진국이었던 일본 화장품 회사 '미로토'의 기술을 들여와 제품만 생산하는 OEM 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2년 뒤 이 회장은 일본 브랜드를 버리고 독립한다. 창업 초기 그는 국내 주요 회사에서 연구원과 공장 직원들을 데려왔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됐다. 미로토 측이 기술 제휴와 연구소장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했고, 이 회장은 미로토와 결별하고 자체 연구ㆍ개발 역량을 강화하기로 한다. 이렇게 '코스맥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하게 된다. 이 회장은 이때를 자신 인생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는다.

이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일본과 유럽 시장을 직접 둘러보면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는 구조가 국내에도 정착될 것으로 확신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화장품 박람회에 참가했다. 까다롭게 굴기만 하고 계약은 하지 않는 유럽 바이어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공짜로 컨설팅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버텼다.

이 회장의 노트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글로벌 브랜드사의 요구가 하나씩 쌓였고, 그의 인내는 로레알과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상위 20개 브랜드사 중 15곳과 거래로 이어졌다.

30여년 전 일본 기술을 버리고 택한 독립 연구소는 지금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코스맥스의 연구혁신(R&I) 센터로 확장됐다. 전 세계 R&I 센터에서 근무 중인 연구원은 1100여명에 달한다. 피부과학부터 제형 기술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체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회장은 코스맥스의 위상을 단순히 화장품을 만드는 하청 회사가 아닌 브랜드사의 파트너로 높였다.


코스맥스 경기 평택2공장 모습./사진=코스맥스


◆ "한국은 세계가 닮고 싶은 아름다움이 됐다"


이 회장은 일각에서 말하는 K뷰티가 정점을 찍었다는 우려에 대해 "한국은 지금 세계가 닮고 싶어하는 아름다움이 됐다"고 말한다. 한국은 이미 뷰티 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갖췄단 것이다.

이 회장은 나라 이름에 '뷰티'가 붙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그 나라가 아름다워야 하고, 그 아름다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쓰는 제품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

이 회장은 한국이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글로벌 브랜드사가 모인 큐텐재팬 컨퍼런스에서 그는 "한국인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그 옷은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보고, 한국 음식이 사랑받고 있고, 한국은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며 "이미 한국 여성의 의식주는 세계에서 욕망의 대상이 됐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다고 이 회장은 행운에만 기대지 않는다. 한류는 마중물일 뿐 그는 모든 기본은 '품질'이라고 말한다. 한류 인기로 초도물량은 찍어낼 수 있지만 재구매는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 모두 화장품 모델입니다. 코스맥스가 한국 기업인 것이 코스맥스에게는 기회이자 행운이죠."

이 회장은 그렇게 다시 무대 뒤로 물러서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오진주 기자 oh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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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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