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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최강 빌런 ‘타노스’. 정복하는 곳마다 개체 절반을 학살하는 그는 줄곧 ‘균형’을 강조한다. 인간(개체)이 너무 많아 우주가 병들었으니 균형을 맞춰 치유하겠다는 ‘확신범’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어벤져스를 창설한 ‘닉 퓨리’ 역을 맡은 사무엘 잭슨은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발렌타인’이라는 악당으로 출연한다. 그에게 인류는 지구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다. 지구를 살리려면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새로 시작할 소수만 남기고 나머지 인류를 모두 없애려고 한다.
과거 블록버스터 영화 속 악당이나 비밀단체의 목표는 ‘세계 정복’이다.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 문명의 목적 역시 ‘지구 정복’이다. 그런데 관객들에게 다소 ‘모호’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이런 목적이 시나리오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한 악행의 명분은 환경과 이를 위협하는 인간이다. 방법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너무 많은 인류와 소비로 지구가 병들었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한다.
올여름에는 그런 공감을 더욱 절실하게 체감했을 것이다. 유례없는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고 있다. 해가 갈수록 기온이 상승할 테니 이 정도 더위에 짜증 내지 말라는 푸념이 나온다. 지금이 제일 시원한 때라는 경고다. 멸종하는 생물들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른다. 이러다 지구 멸망이 오는 건 아닐까. 혹시 지구가 자생력을 발동해 영화 속 빌런들처럼 개체를 줄이기 시작한 것일까.
그런데 나만큼 걱정이 큰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덥다. 더워”를 연발해도 “큰일 났다”라는 탄식은 많지 않다. 무뎌진 것일까. 포기한 것일까. ‘이제는 이런 더위와 함께 살아가야 할 때’라는 말도 나온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했다.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EU에서는 시행시기를 늦추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최근의 이상기후가 ‘정말로 더 이상하지만’ 관세전쟁에 지구촌 톱뉴스 자리를 내줬다.
결국 경제, 돈이 먼저다. 지구의 생존보다는 인간의 일자리가 우선이다. 현실 속 슈퍼 빌런은 영화 속 슈퍼 빌런과 달리 지구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인간은 지구에게 바이러스 같은 존재일까.
어찌해야 할까. 그나마 새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육성에 다시 속도를 내겠다고 나선 점이 눈길을 끈다. RE100 산업단지와 전력망 확충, 지역균형발전으로 연결하는 디테일에서 강한 실행 의지와 가능성이 엿보인다. 과거와 다른 원자력과의 병행전략에서는 현실감각이 돋보인다. 지금은 탄소저감을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비상상황이다.
물론 지구의 위기를 나몰라라 하는 초강대국과 우리 혼자 맞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현실 속 빌런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영화 속 영웅들처럼 각국이 포기하지 않고 힘을 모아야 한다. 그건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김정석 정치사회부장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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