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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2개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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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8-03 13:45:11   폰트크기 변경      
김태형 산업부장

김태형 산업부장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전 세계가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휘청이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선언한 것은 30년간 유지된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와 FTA(자유무역협정)의 무력화 선언이었다. 세계는 경악했고, 산업계는 생존전략을 짜느라 불면의 밤을 보냈다.

한국과 일본이 받아든 관세율은 25%. 일본 이시바 총리는 760조원 투자를 약속하고 관세를 15%로 낮췄다. 한국도 약 500조원짜리 투자 보따리와 관세 인하(25→15%)를 맞바꿨다. 반도체·의약품 등 핵심 품목엔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수출 경쟁국들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조건에서 경쟁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바꿨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대표적이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뉴욕 플라자 호텔로 주요 5개국 재무장관을 불러 달러 절하를 강요했다. 타깃은 대미 흑자국인 일본과 독일. 이듬해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몰락하고, 그 틈새를 삼성 등 한국 기업이 비집고 들어갔다.

트럼프는 40년 전 레이건과 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 세계화 시대를 상징하는 WTO 체제를 허물고 ‘미국에 물건을 팔려면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새로운 규칙을 강요한다. 30년간 유지해온 글로벌 분업 체제를 뒤흔드는 혁명적 조치다. 앞으로 트럼프가 얼마나 낯설고 공포스러운 행정명령을 더 쏟아낼 지 아무로 모른다.

시장이 가장 경계하는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점에서 한미 관세협상은 일단 성공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6단체도 “이번 합의는 수출환경 불확실성 해소는 물론, 우리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주요국과 같거나 더 좋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관세 협상이 타결된 바로 그 순간, 국내에선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31일 오전 손경식 경총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조합법 개정을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 때문이다.

당초 이 법은 불법파업 손해배상액이 과도하고 급여 압류로 근로자 생활이 어려워지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노사 교섭 대상을 원청으로, 쟁의 대상을 기업 경영전략으로 각각 확대했다. 손 회장은 “원청기업이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 사업체를 이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담은 더 센 상법 개정안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8개 경제단체는 “참담한 심정”이라며 입법 재검토를 호소했다.

이재명 정부는 세제개편안을 통해 ‘증세 폭탄’까지 투하했다. 관세와 환율에 이어 증세까지 3대 악재가 겹치자, 8월1일 코스피는 126.3포인트 급락하며 한 달치 상승분을 반납했다.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약속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재원은 대부분 기업 부담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핵심 산업 총수들이 워싱턴까지 달려간 이유다.

그런데 미국발 관세 폭풍을 간신히 피해간 우리 기업들은 국내에서 노란봉투법과 상법ㆍ세법 개정이라는 또 다른 폭풍과 마주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외에선 투자를 약속하고, 국내에선 규제와 증세가 발목을 붙잡는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기업들이 치르고 있는 ‘2개의 전쟁’이다.

김태형 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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