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에 소액주주 대변 이사 확대
99% 원안 가결 거수기 이사회 문제
지배주주가 이사회 구성 현실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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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권해석 기자]회사 이사회에 소액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이사의 진입 가능성을 높이는 내용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만 남겨두고 있다. 지난달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상법이 개정된지 한 달 여만에 2차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으로 지적됐던 기업 거버넌스 구조 개편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재계를 중심으로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이사회 노린 2차 상법
지난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을 최소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지난달 3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골자로 처리된 1차 상법 개정의 후속편 성격이다. 오는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시도될 공산이 크다.
시장에서는 1차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안건에 소액주주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면, 이번 2차 개정안은 이사회 구성 자체에 변화를 주는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2인 이상 이사 선임 과정에서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선임할 이사가 3명이면 1주에 3표가 부여되고 3표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소액주주들이 선호하는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확대도 지배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 구성원을 늘리는 효과가 예상된다.
감사위원회는 3인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고 3분의 2 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하는데, 최소 2명을 다른 이사와 분리해서 선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차로 개정된 상법에 감사위원 선임과 해임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이 들어갔던 만큼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이 늘어날수록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력은 강화될 전망이다.
◆거수기 이사회…유명무실 집중투표제
이사회 구성을 개편하려는 시도는 국내 상장기업 이사회가 사실상 지배주주의 입맛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지난 2023년 5월2일부터 지난해 5월14일까지 80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344개 상장회사의 이사회 안건 9155건 가운데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53건, 0.58%에 그쳤다. 상장기업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이유는 지배주주가 이사회 구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코스피200 기업의 93%가 지배주주가 있다. 이들 지배주주의 평균 지분율 42%다. 평균 74%인 주총 참석률을 고려하면 지배주주가 이사회 100%를 선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액주주에게 유리한 안건이 이사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힌다. 상법에도 이미 반영이 돼 있지만, 자율사항인 탓에 국내에서는 거의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집중투표제를 실시한 기업은 KT&G와 고려아연, JB금융지주 뿐이다. KT&G는 작년 3월 주총에서 이사를 선임하면서 집중투표제를 적용했다.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은 올해 1월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사용한 바 있다.
◆경영권 분쟁 우려
재계는 연이은 상법 개정 추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차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하면 최대주주 아닌 2∼3대 주주가 이사회를 주도할 수 있고, 해외 사모펀드 등에 의한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17일부터 21일까지 진행한 조사를 보면, 74.0%가 경영권 위험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답했다.
특히 경영계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의무 소각이 담긴 3차 상법 개정안까지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 부담감이 크다는 입장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자사주를 의무 소각해야 한다면 우호주주에게 자사주를 넘겨 경영권을 방어하는 백기사 전략을 쓸 수 없게 된다”면서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있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는 경영권 방어가 취약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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