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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시장 위에 ‘UFO’가 뜬다…서울시 ‘건축상’ 수상작 5곳 함께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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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8-11 09:49:43   폰트크기 변경      
세계가 주목한 ‘K-건축물’ 탐방

신흥시장 ‘클라우드’ ETFE 지붕 설치
신길중, 교실 옆 19개 마당ㆍ옥상 놀이터
영등포 ‘생각공장’, 보행로 중심 배치
대방청소년센터, 지하 벙커 문화시설로
원서작업실, 목조 지붕 5개로 경관 조화


밤에 바라본 신흥시장 ‘클라우드’ 전경. / 사진 : 서울시 제공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밤 공기가 얇아질 때 해방촌 신흥시장의 하늘에 둥근 빛이 켜진다. 가로등도 간판도 아닌, 시장 위로 살짝 떠 있는 반투명의 지붕이 마치 UFO와 같이 은은한 광을 내뿜는다.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작인 용산구 신흥시장의 클라우드의 설계자인 위진복(UIA건축사사무소) 건축가는 “고도제한이라는 이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 상인과 소유주들 등과의 수년간 협의를 통해 시장에 새 지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진행된 서울시 ‘건축기행’ 프레스 투어는 최근 3년 동안의 ‘서울시 건축상’ 수상작 가운데 다섯 곳을 설계자들과 함께 걷는 시간이었다. 한때 오세훈 시장이 직접 찾았던 혁신 건축 현장 중 일부이기도 했다.



신흥시장 ‘클라우드’—가벼운 지붕이 바꾼 낮과 밤


내부에서 바라본 신흥시장 ‘클라우드’. / 사진 : 서울시 제공 


먼저, 신흥시장 ‘클라우드(CLOUD)’는 공기를 머금은 투명 막(ETFE)을 아치처럼 띄운 공공 가설건축물이다. 무거운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얇고 굴곡진 흰 기둥 48개가 4개씩 12다발을 이루어 지붕을 받친다. 낮에는 자연광이 골목 깊숙이 스며들고, 밤이면 지붕 자체가 은은한 조명처럼 작동한다.


마치 유럽 거리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1층의 식당과 점포 사이에는 테이블이 놓이고, 2·3층과 옥상까지 공방과 작은 가게가 올라탔다. 전통시장이 ‘MZ들의 핫플레이스’가 된 배경이다.

위 건축가는 기둥 사이를 지나며 “협의만 3년 걸렸다”라며 시장 상인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30대에 시작했는데 제가 40대가 되어야 끝났다”며 “앞자리가 바뀔 만큼 길었던 공사였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 길었던 시간은 끝났지만, 이후 신흥시장이 핫플레이스로 등극하고 입소문이 퍼졌다. 그에게 다른 자치구 전통시장에서도 의뢰가 들어왔다. 그러나 답은 단호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연락 왔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저는 안 합니다. 후배들이 해야죠(웃음).” 진담 섞인 농담 속에 프로젝트의 강도가 엿보였다.


2017년 설계 공모 이후 2022년 완공한 이 작품은 서울시가 건축주였던 공공 가설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를 이루며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신길중학교—“집처럼 작고 낮은, 마을 같은 학교”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신길중학교.  / 사진 : 서울시 제공 


“여기가 학교 맞냐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옥상 포함 건물 구석구석 19개 정도 되는 마당에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나와 뛰놉니다.” 신길중학교 설계자 이현우 이집건축사사무소 대표의 말이다.

영등포 일대 고층 아파트 숲을 빠져나오면 박공지붕이 줄지어 선 풍경이 불쑥 나타난다. 멀리선 두 개 층으로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3층, 4층이 ‘계단’처럼 드러난다. 교실의 최소 단위를 박공 매스로 쪼개어 배치했기 때문이다. “지붕 하나당 교실이 하나”라는 이 건축가의 설명처럼, 교실마다 천장과 재료, 채광이 조금씩 다르다.


무엇보다 학교를 관통하는 건 ‘중앙 마당’의 리듬이다. 교실 바로 옆으로 총 19개의 마당이 흩어져 있어, 종이 울리면 학생들이 문을 열고 곧장 바깥으로 나온다.


신길중학교 마당. / 사진  : 서울시 제공 


옥상은 학교의 요청으로 데크와 어닝(차양)을 더해 놀이터가 됐다. “입체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 하나쯤은 가질 수 있도록 재밌는 공간을 만들고자”했다던 설계 의도는 복도를 ‘통로’에서 ‘휴식’으로, 옥상을 ‘금지’에서 ‘개방’으로 바꿨다.


“학교 맞냐”는 반응은 그래서 나온다. 직사각형 하나로 위압하던 ‘학교’는, 여기서 ‘작고 낮은 마을’처럼 작동한다. 2022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대상 수상 사실은 그 설득의 증거다.



생각공장—장벽 대신 ‘도시 안의 길’을


서울 영등포구 생각공장 전경. / 사진 : 서울시 제공 


인근 영등포 대로변의 ‘생각공장’으로 발을 돌리면, 세 동이 중앙 광장을 둘러싼 지식산업센터가 보인다. 지하 4층~지상 15층, 연면적 약 10만㎡. 정면만 보면 덩치 큰 업무시설이지만, 가까이 가면 선큰(sunken)과 중정, 테라스와 조경이 보행을 품어낸다.

설계를 맡은 김동관(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가는 “건축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큰 업무 빌딩을 장벽이 아닌 ‘도시 안의 길’이 되도록 만든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세 면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대지에서 동서남북으로 길을 뚫고, 공용공간을 특화해 ‘돌아서 가는 길’을 ‘가로지르는 길’로 바꿨다. “3면이 아파트인 특성인 곳이라 큰 건물이 자칫 기존 보행자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걷고 싶은 출근길”로 설득한 셈이다. 지난 2023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BUNKER 대방청소년센터—동굴의 스케일을, 아이들에게


BUNKER 대방청소년센터. / 사진 : 서울시 제공 


노량진근린공원 안,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곡면 천장이 활처럼 휘도는 거대한 공간이 열린다. 1956년 공군본부 지하 군사시설로 준공돼 1989년까지 쓰였다. 이후 와인 저장고·공원 자재창고로 머물렀던 벙커. 2021년 서울시와 동작구의 리모델링으로 ‘청소년 문화·힐링’ 시설이 됐다. 연면적 1489㎡, 지하 3층.


설계자 조진만(조진만건축사사무소) 건축가는 “전쟁의 유산이기도 한 이 공간은 와인저장고, 자재창고 등 여러 사용 주체들이 거쳐갔던 곳”이라며 “전시, 행사, 게임방 등 아이들이 꾸려나갈 수 있도록 공간의 여백을 살리고 환기를 고려한 소방설계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기존 상하층 바닥 일부를 해체해 층을 관통시키고, 철골로 매단 ‘다락’을 얹어 깊이를 드러냈다. 지하의 항온·방음은 장점으로 살리고, 서로 다른 층의 입구와 공기 순환 배관인 덕트로 신선한 공기를 유입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놀 수 있도록 정형화하는 대신 열린 구조”를 택한 이곳은 2023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원서작업실—다섯 지붕, 한 마을의 호흡


원서작업실. / 사진 : 서울시 제공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창덕궁 비원 서쪽, 북촌의 경사 골목에 선 ‘원서작업실’이다. 건축가가 직접 만든 사무실이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이곳은 노출 콘크리트 위로 목조 지붕 다섯 개가 겹겹이 얹힌 하이브리드 건물이다. 대지 351.4㎡, 연면적 599.21㎡(지하 1층·지상 2층).

이날 가장 눈에 띄는 건 지붕선이였다. 용마루를 정면이 아니라 비껴 접어 처마선이 살짝 상승하도록 만들었고, 다섯 지붕을 서로 다른 크기·방향으로 포갰다. 모서리에는 기둥 대신 창을 배치해 은행나무와 비원의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원서작업실. / 사진 : 서울시 제공


건축주이자 설계자인 유재은(시건축) 대표는 “전통의 기본은 지키되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건물”이라며 “용마루 선의 방향과 처마선의 경사에 차이를 둬 기존 마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고 말했다. 인근 북촌 한옥과 완전히 같아지려 하지 않되, 스케일·처마·마당이라는 핵심 어휘를 공유하며 현대의 작업실로 또렷이 서는 길을 택한 셈이다.


그 균형감은 2024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으로 확인됐다. ‘한옥이어야만 한다’와 ‘완전한 현대’ 사이에서, 이 건물은 “어울림”이라는 해법으로 답한다.



건축이 길을 놓고, 도시는 그 길을 걷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5월 신흥시장을 설계한 위진복 건축가를 만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 사진 :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지난 6월, ‘K-건축’과 도시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K-건축문화 종합지원계획’을 발표했다. 경쟁력 있는 국내 건축가들의 세계 무대 진출을 돕겠다는 취지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부터 약 한 달 동안 해방촌 클라우드 등 혁신 건축현장 15곳을 직접 찾았고, 19명의 건축가를 만나 의견을 듣기도 했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간담회로 이어가며 논의를 깊게 했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모인 현장의 목소리는 ‘K-건축문화 종합지원계획’에 반영됐다.

국내 건축가 참여비율 확대, ‘서울국제도시공간디자인상’ 신설, ‘신진건축가상’ 도입, 설계의도 구현 계약 대상 확대 등 제도적 장치가 그것이다.

정책의 속도는 행정의 시간에 달렸지만, 현장은 이미 자기 방식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지붕 아래 모인 사람들, 지하에서 솟는 활동, 마당으로 흘러나오는 발걸음이 그 증거다. 다음 문장은 시민과 설계자, 행정이 함께 써 내려갈 차례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골목 위로도, 구름 같은 지붕이 뜰 것이다. 그 아래에서 도시는 다시 밝아진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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