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화백(1913~1974)은 민족 정서와 철학을 고유의 조형 언어로 승화시킨 '국내 미술시장의 황제주'로 통한다. 1963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한 그는 명예상을 받은 뒤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향한다. 홍익대 미술대학장과 한국미술협회 회장직을 과감히 버리고 다시 그림을 시작한다는 각오로 자신의 예술세계 혁신에 채찍을 가했다. 1974년 뉴욕에서 뇌출혈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는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등에서 현대미술을 배우고 작업하는 긴 여정을 거쳤다. 1971년작 푸른 전면점화 '우주'는 지난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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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만에 공개되는 김환기의 '봄'. 사진=케이옥션 제공 |
김환기가 서양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머문 시기에 제작한 수작을 비롯해 이중섭의 미공개작, 박래현의 그림, 김종학과 강요배의 색채미학, 세계적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조각 등 국내외 쟁쟁한 미술가들의 희귀한 작품들이 여름철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군다.
미술품 경매회사 케이옥션이 오는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치르는 여름철 빅세일 행사에는 고가 미술품 88점(약 80억원)이 차례로 경매에 부쳐진다. 국내 미술시장이 벌써 3년째 조정을 받고 있지만 강남권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이 힘을 받고 있는 만큼 조만간 회복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규모 세일행사다.
손이천 케이옥션 홍보이사는 “흥미롭게도 미술 시장은 주식 시장과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며 “거시 경제 흐름 속에서 같이 움직이고, 시장 심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림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지금이 컬렉션과 투자의 타이밍”이라고 조언했다.
케이옥션이 벌이는 이번 여름철 빅 세일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50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김환기의 작품 1950년대 작 ‘봄’이다. 1975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김환기 회고전’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처음 공개된 이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956-1957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전통의 모티프와 파리 시기의 추상 형식이 맞닿아 있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란 점에서 조형적 가치가 뛰어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제작 시기, 소재, 화면 구성 측면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의 대표작인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와 깊은 유사성을 지닌 명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한국적 정서가 짙게 밴 여인을 비롯해 새장, 매화, 꽃수레, 달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들을 전면에 배치해 관람객과의 정서적 유대를 이끌어 낸게 특징이다. 또한 특정한 주제를 강조하기보다는 다양한 오브제를 장식적으로 배열해 회화적 리듬과 시각적 즐거움까지 아우른게 이채롭다.
케이옥션 측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몇십 년 만에 대중에게 공개돼 희소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경매는 20억원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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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민주고발' 사진=케이옥션 제공 |
이중섭의 ‘민주고발(民主告發)’도 일반에 처음 공개돼 새 주인을 찾는다. 1953년 출간된 구상 시인의 사회비평집 ‘민주고발(民主告發)’ 을 위해 제작된 표지화 시안 네 점 중 한 점이다. ‘민주고발’은 구상이 1951년 10월부터 1952년 8월까지 발표한 사회비평문을 엮은 책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의 독단적인 권력 행사와 권위주의적 억압, 그리고 사회 구조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추정가 1억원~1억2000만원이 매겨진 이 작품은 두 예술가의 깊은 교류와 시대정신이 녹아들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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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의 '여인들' 사진=케이옥션 제공 |
해방의 감격과 민족적 자긍심을 섬세하게 담아낸 우향 박래현의 ‘여인들’도 나온다. 화면 중앙에 작은 태극기를 수놓아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은유했고, 그 주변에 인물들을 여성적인 섬세한 필치로 묘사해 해방의 기쁨을 사실적으로 품어냈다. 특히 백색 한복 사이로 배치된 푸른 저고리와 역동적으로 휘날리는 태극기는 박래현 특유의 세련된 색채 감각과 야외 공간의 활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작품은 1997년 삼성문화재단이 발간한 도록 ‘한국의 미술가 박래현’에만 수록돼 있다. 추정가는 1700만~1억2000만원이다.
케이옥션은 여름 시즌을 맞아 경쾌하고 신선한 색채 미학을 간직한 유명화가들의 걸작들을 라인업했다.
김종학의 작품 ‘여름풍경’(8000만~2억원)은 대담하고 경쾌한 원색을 바탕으로 푸른 산과 하늘, 화사한 자연의 에너지를 경쾌하게 풀어내 눈길을 끈다. 코발트 블루 톤을 통해 탁 트인 바다의 청량감과 함께 해방감, 낭만의 심상을 직관적으로 전한 이대원의 ‘바다’(5500만~1억2000만원), 고요히 펼쳐진 푸른빛의 산과 달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구성으로 담아낸 김환기의 또 다른 작품 ‘산월’(4000만~8000만원), 강렬한 색채로 살아 꿈틀대는 한여름 들녘의 생동과 자유로움을 시각화한 안창홍의 ‘양귀비 언덕’(5800만~1억원), 새벽의 푸른빛 바다의 신비롭고도 차분한 순간을 담아낸 강요배의 ‘조천’(3000만~6000만원)등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입찰대에 오른다.
이 밖에 장욱진의 ‘가족도’(1억1000만~2억원), 김창열의 ‘물방울’, 세계적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Red/Blue)’ 등 국내외 거장들의 다양한 작품도 출품됐다.
출품작은 오는 20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만날 수 있다. 경매 참여는 케이옥션 회원 가입 후 서면, 현장, 전화, 온라인 라이브 응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며, 경매 당일은 회원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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