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에서 위탁자가 부가가치세 환급금을 수탁자(신탁사)에게 양도하기로 약속해놓고 환급금을 직접 받아 임의로 썼더라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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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의 상고심에서 실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씨 등은 부동산 개발ㆍ공급 회사를 설립해 토지를 취득한 뒤 2017년 9월 한국토지신탁과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을 맺고 오피스텔을 신축ㆍ분양했다.
계약에는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부가가치세 환급청구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하고 그 양도 통지에 관한 대리권도 수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A씨 등은 세무서로부터 2018년 1ㆍ2기분 부가가치세 환급금 약 50억원을 받아놓고 임의로 쓰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등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는 신탁사업에 따라 발생한 부가가치세 환급금이 위탁자와 수탁자 중 어느 쪽의 몫인지, 환급금 수령ㆍ사용이 횡령죄인지가 쟁점이 됐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에 ‘신임관계’가 있어야 한다.
1ㆍ2심은 “피고인들과 피해 회사(신탁사) 사이에는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부가가치세 환급금의 보관에 관한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피고인들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며 A씨 등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채권양도인(피고인들)이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춰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니라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하고,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해 양도 채권의 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신임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채권양도인이 양도한 채권을 추심해 수령한 금전에 대해 채권양수인을 위해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 채권양도인이 그 돈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문제가 된 계약 내용에 대해 “피고인들 운영 회사가 부가가치세 환급청구권자로서 환급금을 직접 수령하는 경우, 그 수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그 환급금을 피해 회사의 계좌에 입금해야 할 협력의무가 있음을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들과 피해 회사 사이에 부가가치세 환급금의 보관에 관한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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