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 KTX 안전 지키는 사람들
라이다 스캐너 장비 멘 작업자가
걸어가면 수만개 점이 3D지도 작성
벽 변형·균열·누수·박리 체크
‘안전처방전’ 따라 보수계획 세워
[대한경제=박흥순 기자]“금일 작업 구간은 비룡터널 종점부터 시점 방향 전 구간입니다. 작업 차단 시간은 1시 20분부터 4시까지 주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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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경부선 오송역 인근 비룡터널 입구. /사진:박흥순 기자 |
지난 27일 오전 1시, 전국이 깊은 잠에 빠진 시간, KTX 경부선 오송역 인근 비룡터널 입구는 환한 조명과 함께 20여명의 작업자들로 북적였다. 하루 수백회 열차가 오가는 철도 대동맥이 멈춘 유일한 시간이다. 이들의 손에 KTX의 안전이 달려 있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의 임무는 2004년 개통해 20년이 넘은 비룡터널(총연장 2.9㎞)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정밀안전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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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경부선 정밀안전진단 작업 시작 전 TBM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박흥순 기자 |
안전모와 반사 조끼, 개인 조명을 다시 한번 확인한 작업자들이 작업계획서, 작업원 적합성 검사기록부 등 5종의 서류에 서명한 후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널 내부는 작업자들이 켠 조명으로 벽면의 속살이 드러났다.
“라이다(LiDAR) 스캐너 장비를 맨 작업자가 걸어가면 실시간으로 터널의 3D 지도가 만들어집니다.”
현장에서 눈길을 끈 것은 최첨단 ‘이동형 스캐닝 시스템(MMS)’이었다. 용역업체 소속 작업자가 등에 멘 장비의 라이다 센서가 360도로 회전하며 레이저를 쏘자 태블릿 화면에 벨마우스, 옹벽, 사면 등 터널 외부 모습이 무수한 점 데이터(포인트 클라우드)로 순식간에 구현됐다.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 입구에서 실시간으로 3차원 지도를 만들고 스스로 위치를 파악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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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다 센서 장비를 활용해 3차원으로 구현된 비룡터널 입구 모습. /사진:박흥순 기자 |
과거에는 작업자가 일일이 도면에 손으로 균열 위치나 길이를 기록했지만, 이제는 ㎜ 단위의 정밀도를 가진 3D 데이터가 이를 대체한다.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는 터널의 ‘진단기록지’가 된다. 5년 뒤 다음 진단 때 데이터를 비교하면 터널 벽의 변형이나 사면 유실 여부를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스캐닝이 끝나자 고해상도 카메라 촬영이 이어졌다. 촬영된 이미지는 3D 모델에 정확히 합쳐지고, AI(인공지능)가 자동으로 균열, 누수, 박리 등 손상을 분석해낸다. 김대환 국토안전관리원 부장은 “현재는 터널 외부 점검에 활용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터널 내부 점검도 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보다 신속하게 터널을 살필 수 있으며, 높은 신뢰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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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전관리원 관계자가 터널내부를 측량하는 모습. /사진:박흥순 기자 |
첨단 장비가 동원됐지만, 진단 과정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열차 운행이 없는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허락된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 이마저도 다른 작업 차량이 먼저 통과해야 해 실제 작업 시간은 더 줄어든다. 왕복 2.9㎞에 달하는 터널의 중간 지점을 점검하는 날에는 30분을 걸어 들어가 20분 남짓 작업하고, 다시 걸어 나와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현장 관계자는 “작업시간이 부족해 안전진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며 “터널에 들어가고 나가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작성해야 하는 서류도 많아져 작업시간이 많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날 작업자들은 점검 대차에 올라 터널 천장과 벽면을 꼼꼼히 살폈고, 배수로에 이물질은 없는지, 500m 간격의 비상 대피소는 제기능을 하는지 등 수십 가지 점검 항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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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터널 내부에는 500m 간격으로 대피소가 있다. /사진:박흥순 기자 |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시설물의 최종 등급으로 산정돼 관리 주체에 전달된다. ‘B등급(양호)’을 받은 비룡터널은 5년마다 정밀안전진단을 받는다. 진단에서 발견된 결함들은 보수·보강 계획에 따라 조치되며 터널의 수명을 늘려간다.
김 부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설물 성능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꾸준한 유지보수를 통해 수명을 늘리는 것”이라며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점검결과를 착각하는 등 한계가 있어 결국 최종적으로 이상 유무를 판단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사람의 눈과 경험”이라고 말했다.
박흥순 기자 s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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