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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규제의 두 갈래 길, 미국의 ‘속도’와 유럽의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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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8-28 10:55:21   폰트크기 변경      

지난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AI) 경쟁에서의 승리(Winning the AI Race: America’s AI Action Plan)’는 단순한 산업 진흥책을 넘어, 인공지능 기술의 글로벌 규율 패러다임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에 가깝다. ‘혁신 우선, 규제 최소화’를 기치로 내건 미국의 질주는, ‘인간 중심, 권리 보호’를 원칙으로 삼는 유럽연합(EU)의 AI법(AI Act)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세계 AI 시장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고 있다. 법률가로서, 이 두 거대 권력의 상이한 접근법이 우리 기업과 사회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철학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동력으로 간주하고, 속도를 저해하는 모든 규제를 ‘장벽’으로 보고 철폐하려는 입장이다. 반면 EU는 AI를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기술로 정의하며, 그 위험을 사전에 통제해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는 기술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 차이이자 모든 규제 설계의 출발점이다.

철학의 차이는 구체적인 법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EU AI법의 핵심은 세계 최초로 도입한 ‘위험 기반 접근법(risk-based approach)’이다. 이는 AI 시스템을 위험도에 따라 ‘용납 불가’, ‘고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 위험’의 네 단계로 분류하고, 각 등급에 따라 차등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EU는 정부의 사회적 신용 평가 시스템이나 인간의 잠재의식을 조종하는 AI를 ‘용납 불가 위험’으로 분류해 시장 출시를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기술 효용성보다 인권 침해 가능성을 더 중대하게 본 결과다.

채용, 의료, 핵심 인프라 등 사회적 영향이 큰 ‘고위험’ AI 시스템에는 사전 적합성 평가, 위험관리 시스템 구축, 데이터 거버넌스 확보, 인간의 감독 가능성 보장 등의 의무가 부과된다. 위반 시에는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7%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미국은 이러한 사전적ㆍ포괄적 규제 체계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AI RMF)’에 대한 수정 지침이다. 프레임워크는 AI 개발 및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향, 보안, 개인정보 침해 등의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자발적 지침서로,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설계됐다.

그러나 이번 행정명령은 프레임워크에서 ‘허위 정보(misinformation)’, ‘다양성ㆍ형평성ㆍ포용성(DEI)’과 같은 사회적ㆍ윤리적 항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기술적 결함이나 보안 문제로 한정하고, 사회적 차별이나 허위 정보 확산과 같은 문제는 더 이상 핵심 위험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딥페이크(deepfake)’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해 허위 정보의 위험을 정면으로 규제하는 EU의 투명성 의무와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결국 두 규제는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와 ‘아메리칸 스탠더드(American Standard)’의 충돌로 귀결된다. EU는 자국의 거대 시장을 지렛대로 삼아 글로벌 기업들이 EU의 기준을 따르게 함으로써 사실상의 국제 표준을 만들려고 한다. 반면 미국은 동맹국에 자국의 하드웨어, 모델,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풀스택 AI 패키지(full-stack AI export packages)’를 수출해 미국 중심의 기술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제 두 상이한 규제 체제 사이에서 복잡한 법적 선택에 직면했다. EU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안전 및 인권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미국 시장에서는 빠른 기술 혁신과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법규 준수를 넘어, 기업의 AI 윤리 철학과 장기적인 경영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속도’와 ‘신뢰’ 중 어느 가치에 무게를 둘 것인가. AI 시대를 항해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김동섭 법무법인 YK 변호사ㆍ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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