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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라운지] 규제 중심 안전보건 정책에서 안전한 작업 문화 조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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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9-01 06:00:57   폰트크기 변경      

산업재해를 유의미하게 줄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이지 ‘규제의 강화’가 아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규제는 이미 충분하다. 1981년에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수차례의 개정을 거쳐 그 대상과 범위를 확대해 왔으며, 그 내용을 구체화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무려 674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빠져나갈 틈이 없이 촘촘하다. 2021년에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처벌 기준을 마련하기 위하여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되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근로감독관들은 각 사업 분야에 적용되는 안전보건규칙 조문을 하나하나 체크리스트로 활용해 위반사항을 도출한다. 변호사로서 산재 사건을 접해 보면, 사업주가 이 촘촘한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과거처럼 피해자 유족과 합의했다는 사정이 벌금형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식으로든 형사처벌과 행정벌이 내려질 것을 사업주들은 결코 모르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업무상 사고 사망재해자수는 10년 전 900명대에서 최근 5년간 800명대로 내려왔으니,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이 법률을 제정한 것을 고려하면 위 통계적인 추세는 미미하다. 규제를 강화한 데에 따른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2024년도 산재사고사망만인율은 0.39‱으로, 여전히 OECD 평균인 0.29‱보다 높다.

산업재해 예방의 핵심은 결국 ‘현장 인식’에 있다. 사업주가 아무리 의욕을 가지고 있더라도 작업자의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면 결국 사고는 발생한다. 각 공종별로 수많은 협력업체가 있고, 팀 단위로 도제식으로 작업의 노하우가 전수되는 건설현장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에 대한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따라서 이제는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 곳곳에 안전문화를 뿌리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의 변화의 시작은 작업자 개개인이어야 하고, 안전보건에 대한 정책의 중심도 작업자 개개인에 맞추어져야 한다. 안전보건 책임자는 인식 전환을 유도할 조력자가 되어야 하고, 경영책임자 역시 처벌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안전문화 확산을 주도하는 동반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의 촘촘한 틀 위에서, 이제는 사람의 태도와 문화가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국가 차원에서 ‘WSH(Workplace Safety and Health)’ 전략을 수립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홍보 및 교육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진행하였고, 특히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하여 안전보건 의식 확립을 위한 문화 조성에 힘을 쏟았다. 결국 싱가포르는 산업안전과 관련하여 가장 모범이 되는 국가가 되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을 뿐인데 규제의 강화가 일정 부분 효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충분히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이제는 규제 중심에서 탈피하여 작업자 개개인의 인식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경영책임자와 안전보건책임자는 인식의 변화를 함께 이끌어나가야 할 동반자 내지 조력자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산업안전 모범국가로 거듭날 수 있고, 우리의 소중한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황석현 변호사(법무법인 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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