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안재민 기자] 주요 민자사업이 공사비 부족으로 발이 묶여 있는 가운데 정부는 ‘민자사업 총사업비 억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민자사업을 재정 절감 수단이 아닌 장기적 투자로 바라봐야만 인프라 품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GTX-C노선은 서울 수서에서 경기 양주 덕정까지 연결하는 수도권 핵심 철도망이다. 지난해 1월 착공식을 가졌지만, 건설 물가 급등으로 총사업비가 늘어 실제 공정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실시협약 시점 대비 원자재와 인건비가 크게 올랐다”며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거절했다.
서부선 경전철도 비슷한 처지다. 이 사업은 지난해 12월 민간투자심의위원회에서 ‘실시협약안’이 의결됐지만, 코로나19 여파와 물가 상승으로 악화된 사업성이 회복되지 않아 일부 건설투자자(CI)가 컨소시엄에서 이탈했다. 발안~남양 고속도로 역시 공사비 부족을 겪고 있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민자사업의 공사비를 절감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공사비 부족 등 사업자들의 문제는 그들의 몫이라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며 “민자사업을 평가하는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가 ‘민자 시장의 경쟁을 촉진시켜 재정을 절감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민자사업 공사비를 절감 대상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자사업은 운영권 30~40년이 끝나도 국가 자산으로 남는다. 도로와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은 수명이 다하지 않는 한 계속 쓰인다. 예산 절감을 위해 공사비 부족 문제를 방치하기보다 오히려 안전과 품질에 충분히 투자하고 운영 단계에서 유지관리비를 줄여 총비용을 낮추는 접근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사회적 가치로 떠오른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민자사업 총사업비 억제 원칙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 4월 붕괴 사고가 발생한 신안산선 민자사업의 경우 사고 이전부터 공기 지연에 시달려왔다”며 “공기 지연에 따라 발생할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사를 무리하게 서둘러 사고가 초래됐다는 분석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자사업의 강점은 운영 효율성과 생애주기비용(LCC) 절감이지, 재정 절감이 아니다”며 “총사업비 억제 원칙이 고착화되면 안전과 품질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성공한 민자사업으로 꼽히는 고속철도와 지하철 9호선 등의 사례를 보면 민자사업에 대한 적절한 투자의 긍정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이들 사업은 건설 당시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개통 이후 안전성과 효율성이 입증돼 이용객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민자업계 관계자는 “고속철도, 9호선, 신분당선 모두 공사 당시엔 ‘돈을 너무 쓴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가장 성공한 인프라로 평가된다”며 “안전과 품질에 투자가 선행돼야만 민자 인프라 건설과 운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재민 기자 j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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