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 조지아주 서배너 엘라벨에 위치한 HMGMA. /사진: 연합 |
[대한경제=이계풍 기자] 미국 입국 시 주로 사용하는 전자여행허가(ESTA)와 단기 상용(B1) 비자를 활용한 현지 근무 관행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전문직 취업을 위한 H-1B 비자 대신 비교적 절차가 간단한 단기 체류 자격을 활용해 현지 근무하는 관행이 확산되자, 미 정부가 단속을 본격화하면서 관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ESTA는 한국을 포함한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가입국 국민이 최대 90일 동안 관광이나 단순 상용 목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B1 비자 역시 학회, 회의, 출장 등 단기 비즈니스 활동을 전제로 하며, 현지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해외 전문 인력에 대한 H-1B 비자 발급이 까다롭거나 발급 한도가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ESTA나 B1 비자만으로 미국 현지 업무에 투입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연방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 현장을 급습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는 이 같은 편법 근무가 임금 덤핑과 불법 고용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H-1B 비자는 고용주가 임금 수준과 근무 조건을 신고하고 승인받아야 하지만, ESTA나 B1 자격으로는 이런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합법적으로 비자를 취득한 근로자와의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현지 노동 시장 보호를 내세우는 정치권에서도 단속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이번 조치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대규모 현지 투자가 진행 중인 전기차·배터리·반도체 공장의 경우 전문 기술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지 채용만으로는 인력 수급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또한 기술 유출 우려로 무턱대고 외부 인력을 채용할 수도 없다.
이에 따라 본사에서 엔지니어를 단기 파견해 장기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으나, 이번 조치로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합법적 H-1B 발급이 지연되면 프로젝트 일정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인력 운용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단속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의 이민 규제 강화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향후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사업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한·미 양국 정부가 인력 교류를 위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계풍 기자 kplee@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