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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노트] 전립선 치료제에서 탄생한 기적…“탈모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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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9-09 11:08:09   폰트크기 변경      
우연한 발견이 낳은 탈모치료제 혁명…수백만 환자에게 희망 선사

[대한경제=김호윤 기자] 1990년대 초 어느 병원 진료실. 전립선비대증으로 치료받던 중년 남성이 의사 앞에 앉았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지난번보다 머리카락이 더 풍성해 보였다.

“선생님, 제가 복용하고 있는 약 때문인가요?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있어요.”

이는 의학사에 길이 남을 ‘우연한 발견’의 시작이었다. 전립선 치료를 위해 개발된 피나스테리드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피나스테리드는 원래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으로 변환되는 것을 막는 약이었다. 1992년 6월 프로스카 5㎎로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승인을 받았지만, 연구진들은 곧 더 큰 가능성을 발견했다. 남성형 탈모의 주범이 바로 이 DHT였던 것이다. DHT는 모낭 수용체와 결합해 모낭을 점진적으로 축소시키고, 결국 솜털 같은 가는 모발만 생성하다 완전히 모발 생산을 중단시킨다. 피나스테리드가 DHT 생성을 억제하면서 이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획기적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머크(Merck)는 1990년대 중반 탈모 치료 목적으로 피나스테리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전립선 치료용 5㎎보다 낮은 1㎎ 용량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결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18∼41세 남성 155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피나스테리드 복용 그룹의 83%에서 탈모 진행이 중단됐고, 65%에서는 모발 수가 실제로 증가했다.

1997년 12월 19일, 미국 FDA는 피나스테리드를 남성형 탈모 치료제로 승인했다. ‘프로페시아’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된 최초의 경구용 탈모치료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행복한 실수’가 벌어지고 있었다. 1970년대 업존 제약회사에서 개발된 미녹시딜은 본래 고혈압 치료제였다.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낮추는 약이었지만, 임상시험에서 환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온 몸에서 털이 과도하게 자라는 전신 다모증이었다. 하지만 연구진들은 이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봤다. 미녹시딜이 모낭 주변 혈관을 확장시켜 영양 공급을 개선하고, 모낭 세포 성장을 직접 자극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모발 성장 효과만 얻기 위해 외용제 형태로 개발됐다. 1988년 8월 17일, FDA는 미녹시딜 2% 외용액을 ‘로게인’이라는 상품명으로 승인했다.

두 약물의 성공은 탈모 치료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이후 1991년 여성형 탈모용 미녹시딜 2%, 2014년 더 강력한 5% 제품까지 출시되며 치료 옵션이 다양해졌다. 현재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탈모 환자들이 이 두 약물로 치료받고 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닌, 예리한 관찰력과 과학적 탐구 정신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오늘날 탈모 치료제 개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더욱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차세대 치료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어 탈모 환자들에게 더 큰 희망을 주고 있다.

김호윤 기자 khy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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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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