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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공수처, 이제는 폐지를 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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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9-09 11:25:40   폰트크기 변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2021년 논란 속에 출범했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제어하겠다’는 민주당의 열망이 법제화된 결과였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공수처 신설을 검찰 개혁의 큰 축으로 내세웠고, 여야 극한 대치 끝에 공수처설치법안이 통과됐던 것이다. 그러나 출범 4년이 지난 지금, 공수처는 존재 이유를 입증하지 못한 채 국민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 발생한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찰 조직이 증거를 은폐·훼손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에서 민주당 정권은 정작 공수처를 수사 주체로 삼지 못하고 특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설립 취지만 놓고 보면 당연히 공수처 수사 대상이지만 현실에선 공수처가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여권 스스로 공수처의 역량과 기능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실적 부진은 더 뼈아프다. 공수처가 직접 기소해 끝까지 책임진 사건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거나 수사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발 사주 의혹,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뇌물 의혹 등에선 검찰총장과 검찰 출신 인사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성과 없이 불기소·무혐의로 귀결되면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만 키웠다. 검찰을 견제한다는 설립 취지는 실종되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는 ‘없다’에 가깝다.

더구나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검찰청 폐지안(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공수처의 존립 명분을 더욱 흔들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수사는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국가수사본부를 포함한 경찰이, 기소는 법무부 산하 공소청이 전담하게 된다. 공수처의 주 표적인 검찰 조직 자체가 해체된다는 의미다. 검찰 견제를 위해 탄생한 조직의 존재 목표가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게다가 중수청과 공수처가 동시에 중대범죄를 수사하게 되면 업역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기관 간 중복 수사와 과잉 경쟁은 수사 공정성을 해치고 국민 불신을 키울 것이다.


민주당이 보수 정당의 거세 반발을 뿌리치고 신설을 강행했던 공수처가 민주당 정권에서도 실력 인정을 못 받고 외면당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공수처는 이제 검찰 개혁의 한 축이 아니라, 민주당 개혁 리스트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했다.

민주당 정권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공수처를 폐지하고 중수청과 경찰 체계 속에서 고위공직자 수사를 재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자 했던 당초 목표는 역사 속으로 넘기고, 작금의 상황 변화를 감안해 원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밀릴 수밖에 없다.


일단 세상 빛을 본 국가 기관은 새로운 생존논리를 만들어내며 폐지 시도에 강력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직접 칼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산파 역할을 했다는 연고성에 얽매여 인공호흡기를 떼내지 못한다면 여타 개혁 작업도 당리당략으로 비치고 국민 지지를 잃을 수 있다. 한 해 운영비 수천 억원 대의 혈세 낭비를 차단하는 동시에 전담 업역을 보장해 효율적인 수사 체계가 착근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에 나서는 게 지금 해야할 개혁 과제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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