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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
[대한경제=김관주 기자] 퇴직연금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추진되면서 자산운용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여당이 퇴직연금도 국민연금처럼 전문가가 적립금을 모아서 굴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안전자산 상품으로 꼽히던 타깃데이트펀드(TDF) 상장지수펀드(ETF)가 적격 투자 대상에서 빠질 조짐이 보여서다.
9일 국회에 따르면 한정애·박홍배·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퇴직연금 기금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영국과 호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제도인 기금형 퇴직연금은 독립 기금법인이 근로자의 퇴직연금 자산을 책임지고 운용하는 구조다.
국내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인 퇴직연금사업자와 개별 계약을 맺고 스스로 투자를 결정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적립금(고용노동부 지난해 말 기준 82.6%)이 예·적금 등 저수익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수익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10년간 평균 수익률은 2.31%에 불과하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작년 말 431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3년 연속 13%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사적연금 구조개혁과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보고서를 통해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한 여러 정책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이를 제도화하기에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는 다분히 비효율적이고 제약적”이라며 “기금형 퇴직연금이 성공적인 제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같이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를 통한 적극적 경쟁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유형의 퇴직연금 기금 설립이 허용돼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현재 발의된 법안마다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 주체가 다르게 설정돼 있다. 한정애 의원의 경우, 수탁법인을 별도 설립해 노사 공동으로 퇴직연금을 굴리는 방식이다. 박홍배 의원안은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도걸 의원은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은 민간 전문 운용사에 퇴직연금 자산을 맡기는 방안을 포함한 법안을 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방향성이 확정된 것이 아니다”면서도 “퇴직연금 수익자의 복리후생을 위해 금융 전문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봤다.
다만, 이러한 상황은 자산운용사에 악재로 여겨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금화가 도입되면 국민연금 등 기금법인의 영향력은 강화될 것”이라며 “자산운용사는 다양한 퇴직연금 상품을 개발하는 대신 보수를 낮출 수밖에 없다. 결국 수익성이 악화돼 대형사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금융당국이 ETF 형태의 TDF를 적격 TDF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나오자 자산운용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공들여 키운 ETF 시장의 일부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기를 고려해 생애주기에 맞게 자산을 배분하는 펀드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8년부터 적격 TDF 제도를 운용 중이다. 통상 퇴직연금 계좌는 적립금의 70%까지만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지만 적격 TDF로 인정받으면 이 비중을 100%까지 늘릴 수 있다.
금융당국 측은 업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TDF는 일반 펀드와 ETF 형태가 있다. 일반 펀드는 해지 시 절차와 시간이 소요돼 장기 보유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ETF는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점이 확인된다. 장기 투자 관점에서 ETF가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주 기자 p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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