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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16년 종심제를 최저가낙찰제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하였다. 종심제는 기술력, 가격의 적정성, 계약 신뢰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건실한 기업이 공정하게 수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단순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품질 중심의 선진 계약제도를 정착시키고, 공공건설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종심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간이형 종심제 구간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입찰 브로커 및 내역 대행업 시장을 만들어 준 것이 그 요인이라며 이로 인해 동일내역 또는 동가입찰 발생, 페이퍼컴퍼니 양산, 제3자에 견적 의존, 브로커에 성공보수 지급(1~3%), 입찰질서 문란(균형가격 조정), 대행사가 키플레이어라는 등 숱한 부작용을 얘기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은 중소업체가 견적 역량이 취약하고 견적팀을 꾸릴 능력과 여력이 없다며 입찰금액 산출내역서 작성을 제3자(외주용역)에게 의존하면서부터이다. 낙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 균형가격에 특화된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건별로 외부 용역을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필요에 의한 대안적 자구책이라 본다.
그러면서 업계는 견적역량을 이유로 적격심사제 확대와 종심제 축소를 건의하고 있다. 입찰내역서 작성 방법과 내용은 종심제나 적격심사제나 동일하다. 1인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수천 개의 입찰내역서를 일괄로 작성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입찰내역서 작성은 기술자의 업무영역이 아니다. 단순 컴퓨터 작업이다. 기술력보다는 가격을 우선하는 적격심사제는 페이퍼컴퍼니 양산 등으로 부실시공 및 안전문제, 건설산업 생태계 교란, 건설업체 경영 악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건설업의 퇴보로 이어질 뿐이다.
종심제에서 나타난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고 본다. 입찰내역서는 자신이 직접 작성ㆍ제출케 하면 된다. 건설업체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기대할 바는 못 되고 정부에서 이를 통제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차세대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 내역 작성 및 개인인증을 한층 강화해 건설사가 내역서를 스스로 작성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방법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물량내역서(공내역서)만 배부하여 입찰자로 하여금 가격(입찰내역서)을 산출하도록 하였다. 이때 입찰내역서 작성은 어려웠다. 발주기관의 설계내역서를 구득하지 못하면 입찰을 포기해야 할 실정이었다. 지금은 발주기관이 설계내역서를 공개하기 때문에 입찰내역서를 손쉽게 작성할 수 있다. 입찰자가 입찰내역서를 직접 작성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제3자(외주용역)에게 의존하는 연결 고리를 끊지 않고는 어떠한 제도 개선도 백약이 무효다.
결론적으로, 적격심사제는 더 이상 공공 공사의 품질을 담보하고 건전한 시장 경쟁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제도로 기능하지 못한다. 입찰 가격에 치우친 변별력 상실, 덤핑 유발, 그리고 페이퍼컴퍼니와 브로커 난립 등 구조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고 건설산업 발전에 퇴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종심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가격’이라는 단일 변수 대신 ‘기술력’과 ‘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건설산업의 질적 성장을 견인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종심제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도입 과정에서 드러난 낮은 낙찰률, 브로커 문제 등은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현행 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박시훈 전 조달청 토목환경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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