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견적 대행 ‘프로그램’ 정조준…업계 초긴장
프로그램–브로커 연계 의혹, 수면 위로
발주기관, 프로그램 수령 리스트 대조·형사대응 검토
![]() |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간이형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에서 담합 의심 정황을 들여다보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주 견적 작성 대행 프로그램 업체를 조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건설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특정 프로그램으로 추출한 견적서를 다량 배포해 균형가격에 맞춰 투찰해온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해석이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공정위가 종심제에서 널리 쓰이는 견적 대행 프로그램을 점검했다는 소식이 퍼진 다음 날(11일) 조달청이 개찰한 간이형 종심제 2건은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먼저 ‘수원보훈요양원 증축사업(이하 추정가격 108억원)’은 참여 대상인 6등급 745개사 중 497개사(66.7%)가 동가 투찰해 균형가격 쏠림을 재현했다. 균형가격을 정확히 맞춘 업체도 7개사나 됐다.
반면 ‘어연2지구 배수개선사업(135억원)’은 참여 대상인 6등급 245개사 중 동가투찰이 22개사(8.9%)에 그쳤고, 균형가격 범위 내 금액 분산도 뚜렷했다. 균형가격을 투찰한 업체도 1곳뿐이었다. 비슷한 규모와 같은 입찰방법의 조달청 시설공사였지만, 불과 7분 간격의 개찰에서 대량 동가가 한쪽에선 사라진 셈이다.
관련 업계는 “그동안 사전에 공유되던 균형가격 정보 통로가 ‘어연2지구’에선 막혔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지역사 임원은 “10일 오전 프로그램 업체 두 곳에 대한 현장조사 소문이 돌자 이후 정보 공유 루트가 급속히 닫혔다”며 “수원보훈요양원은 사전 공유가 이미 끝난 반면, 어연2지구는 공유가 안돼 ‘깜깜이’로 투찰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공정위의 조사 초점이 프로그램-입찰 브로커의 ‘연합’ 활동으로 좁혀지자 현장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A사의 견적 담당자는 “특정 견적 프로그램의 경우 견적서를 만들 수 있는 발주기관이 4∼5군데에 불과하다”며 “이 때문에 견적서를 만들 수 없는 입찰이 발주될 경우, 미리 섭외해 놓은 중견 건설사 견적 담당자에게 견적서 작성을 요청한 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업체에 견적서를 돌린다. 어떤 경우에는 회원사들이 직접 프로그램에 입력한 투찰액을 바탕으로 균형가격을 모은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그 동안 업계 안팎에선 브로커가 프로그램을 통해 내역ㆍ금액을 ‘묶음 전파’해 동일내역ㆍ동가투찰을 키웠다는 의혹이 꾸준했다. 이번 공정위 조사설 이후 정보 공유 고리가 느슨해지자, 7분 차 개찰만으로도 ‘1원 띄우기’ 관행이 사라진 것은 시사점이 크다.
한 중견사 관계자는 “브로커 정보 없이도 버틸 수 있는 건설사는 자체 DB와 모델이 있는 곳”이라며 “건설사의 투찰액이 남에게 맡긴 ‘1원 띄기 기술’에서 ‘리스크가 녹은 숫자’로 바뀌어야 건설산업 전체가 선진화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관련 업계는 공정위의 조사 결과에 상관 없이 브로커-프로그램 연합 활동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주요 발주기관이 간이형 종심제 동가투찰 사태를 눈여겨보며, 건설사의 견적능력 점검에 초점을 맞춘 입찰제도 개선을 검토 중인 탓이다.
한 발주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견적서를 받은 업체 리스트를 받은 후 공동수급체 회원사 내역과 대조할 계획”이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종심제 제도 자체는 손질을 보겠지만, 그 전에 입찰 브로커와 특정 프로그램의 비위 행위 정도는 공정위를 통하지 않고도 형사 처벌할 방법을 찾기 위해 법률자문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