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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설현장 안전의 ‘3E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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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9-23 13:18:51   폰트크기 변경      
처벌만이 능사일까…예방중심 정책이 해법

차희성 아주대 교수

30여년 전, 건축 현장에서 철골 부재 사이로 수십 톤에 달하는 자재를 옮기던 중 한 작업자가 추락할 뻔한 사고가 있었다. 안전장구와 방지막 덕에 큰 피해는 면했지만, 당시 작업반장의 “사망 사고 열 번은 당해야 현장 소장 자격이 있다”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시절 건설현장의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안전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이제는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관리자가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안전과 관련한 행정업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본 업무를 마비시킨다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국제 지표로 보면 우리나라 건설현장은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최근 정부는 ‘사고와의 전쟁’을 선포한 듯한 모습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처벌과 규제는 근본 대책이 아니다. 오히려 유능한 인력을 현장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 결과적으로 국민이 피해를 떠안을 수 있다.

미국 유학 시절 배운 ‘3E 이론’은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설안전은 정부, 기업, 개인이 함께 노력해야 하며, 규제(Enforcement), 기술(Engineering), 교육(Education)의 세 축이 조화를 이룰 때 성과가 난다는 것이다.

첫째, 정부의 규제는 처벌 중심에서 과정 관리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미국 미국산업안전보건청(OSHA), 영국 보건안전청(HSE)은 사고 발생 이후 처벌보다 ‘사전 차단’에 집중한다. 공사계획 수립 단계부터 안전 절차 준수 여부, 안전시설 설치 유무를 꼼꼼히 점검하고 그 결과를 입찰 평가에도 반영한다. 이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둘째, 설계 인허가 과정에서 기업의 안전성과 시공성 검토를 면밀히 수행토록 해야 한다. 현재 설계 심의는 준공 후 구조 안전에 치중하고 있다. 별도의 기술 심의를 통해 시공 과정의 안전성을 따져 ‘사고 예방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셋째, 범정부차원의 교육제도 개선책이 필요하다. 국내 현장의 외국인 노무자 비중은 과반을 넘어선 지 오래다. 불법 체류자의 현장 유입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의 안전 의식 수준은 형편없을 정도로 저조하다. 몸에 익은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근본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연속성 있는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건설산업의 원하도급 구조적 특성상 특정 기업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규제가 아무리 강력해도 사고는 반복된다.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건설안전은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니며, 서구 선진국과 비교해 재해율이 여전히 높다는 점은 냉정한 현실이다. 건설산업이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예방 중심의 정교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 기업, 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안전한 건설현장’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차희성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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